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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 김영남

2011.04.06 14:43

윤성택 조회 수:1824 추천:160


《가을 파로호》/ 김영남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문학과지성 시인선》 387

          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향기로운 시간 속으로
        누가 올 것만 같다
        벌써 오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와
        담벼락을 돌아갔다

        그러자 그 자리
        환한 전등이 내어 걸린다
        깔깔깔 웃음소리 굴러 나오고
        
        웃음에 얻어맞은 난
        파란 멍이 만져진다

        내 멍도 그 사람 따라
        담벼락 위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가
        불빛에 익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누가 그걸 주무르고 있나
        소곤거리는 소리, 흥얼흥얼하는 소리

        누구세요?
        들어오세요


[감상]
남해의 유자가 노랗게 익어가는 풍경이 새콤하게 다가옵니다. 그윽한 유자향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사람’은 계절을 이끌고 지나가는 바람인 듯싶습니다. 유자나무에 총총 열린 그 색감, 전등도 되었다가 깔깔깔 웃음도 되었다가 소곤소곤 흥얼흥얼 소리도 됩니다. 그 애교스럽고 부산한 나무 아래서 누구인들 제안의 멍이 아프게 자리하겠습니까. 자연이 사람을 치유하듯 남해 유자를 주무르고 있는 화자의 생각과 마음이, 눈웃음 선한 얼굴과 겹쳐집니다. 마지막 두 행은 주제에 대한 시인만의 위트 있는 응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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