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별 - 안성호

2006.10.23 17:36

윤성택 조회 수:1959 추천:224

*<이별〉/ 안성호/ 《문장웹진》 2006년 9월호


        이별

        가로등 밑,
        옷걸이에 걸린 노란 우의처럼 고개 숙인 그녀

        벤치를 지나는 누군가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몸에 딱 맞게 단추를 채우고 가버렸다

        흩어지는 발자국마다
        이내 비가 몰려든다
        하굣길 여중생들이 주전부리하듯 빗물이 길 위로 몰려다니고
        고인 빗물 속에 가로등 불빛은
        파문을 일으키며 구겨졌다
        펴졌다

        나는 오랫동안
        먹다 남은 두부처럼 천천히 상해 갔다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그 사이로 구불구불 비가 흘렀다


[감상]
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입니다. 거기에 시인의 고뇌가 있는 거겠지요. 자신의 목소리를 날것으로 드러내면 관념으로 치우치게 되고, 그렇다고 무언가에 빗대기 시작하면 진정성이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쓰기는 화자와 대상에 외줄을 걸어놓고 그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작업과 같습니다. 이 시는 이렇듯 <이별>이라는 슬픔을 <먹다 남은 두부>의 관계로 대담하게 횡단합니다. 줄 위에서 튕겨 오르는 탄력처럼 행과 행에는 긴장이 팽팽하고 <비>를 축으로 소재들이 꽉 맞물려 있습니다.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몸에 딱 맞게 단추를 채우고 가버렸다>는 변심을 암시하는 설정이 참신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1 목도리 - 박성우 [1] 2006.03.23 1894 243
110 꽃의 흐느낌 - 김충규 2005.06.09 1895 204
109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 [2] 2008.06.17 1897 143
108 푸른 밤 - 나희덕 [1] 2001.07.27 1900 268
107 틈 - 신용목 2005.08.02 1902 230
106 그리운 이름 - 배홍배 [1] 2005.07.08 1907 203
105 2009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09.01.10 1907 126
104 당신이라는 이유 - 김태형 2011.02.28 1908 126
103 거의 모든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김경주 [2] 2004.07.28 1913 174
102 2008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5] 2008.01.09 1917 139
101 낡은 침대 - 박해람 [2] 2006.07.22 1918 219
100 밤비 - 한용국 2006.08.22 1918 205
99 모자 - 고경숙 2005.08.10 1923 208
98 취미생활 - 김원경 [1] 2006.03.24 1928 247
97 그 거리 - 이승원 2006.01.12 1938 235
96 구부러진 길 저쪽 - 배용제 [1] 2001.04.06 1939 296
95 누가 사는 것일까 - 김경미 2005.08.16 1953 203
» 이별 - 안성호 [2] 2006.10.23 1959 224
93 가을비 - 신용목 [1] 2007.08.11 1959 138
92 미치겠네 - 함성호 [2] 2005.07.26 1961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