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푸르른 소멸·40 [즐거운 놀이] - 박제영

2002.11.14 11:59

윤성택 조회 수:955 추천:172

푸르른 소멸·40 / 박제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푸르른 소멸·40
                  - 즐거운 놀이  


        딸아, 가을 숲에 가자꾸나
        마침내 충분히 살았다 이윽고 지고 있는 것들 보여주마 물이었으니 물로 돌아가
      고, 흙이었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모르겠어요

        딸아, 가을 숲에 가자꾸나
        후툭 후투툭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빗소리, 바람소리, 낙엽소리, 벌레소리, 새소리, 짐승의 울음소리
        들려주마 마침내 모든 소리
        허이 헤이허 오호호호 오 오행, 만가(輓歌)로 화음됨을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가엾은 것 두려워하지 말거라 이것은 숲이 겨울을 준비하고 봄을 맞이하는 즐거
      운 놀이란다 언제고 아빠도 가을 숲이 될 것이야  그러니 딸아,  그때가 되면 슬퍼
      할 일이 아니라 오늘 이 놀이를 기억해야 할 것이야 즐거운 놀이를

        모르겠어요 자꾸 눈물이 나와요 이젠 집에 가고 싶어요



[감상]
이 혹독한 상영관 안에서, 지독히 빛과 입자로 명멸하는 시간에 축을 세우고 우리는 상영중입니다. 딸과 숲을 산책 하는 구도로 되어 있는 이 시는 한 생애가 곧 '놀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아이의 말이 시적 울림을 자아내는 이유는 놀랍게도 우주의 어떤 질서 앞에 나약한 인간의 단면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소재로 등장하는 두 성격의 미묘한 감정을 철학의 깊이까지 사유해 낸 점이 좋네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51 내 가슴의 무늬 - 박후기 2004.07.16 2160 223
50 날아라 풍선 - 마경덕 2005.07.30 2169 264
49 날아가세요 - 허연 2001.04.12 2172 327
48 달의 눈물 - 함민복 [1] 2004.08.24 2187 220
47 흐린 하늘 - 나금숙 [2] 2005.10.27 2208 243
46 푸른 방 - 문성해 2005.10.01 2209 226
45 간이역 - 김선우 [2] 2001.04.17 2218 324
44 맑은 날 - 김선우 2001.04.18 2227 284
43 밤의 산책 - 최승호 2006.02.28 2229 243
42 파도 - 김영산 2005.09.01 2240 255
41 흔적 - 배영옥 [2] 2005.11.16 2277 250
40 연애 - 안도현 2001.04.20 2280 282
39 빈집 - 박진성 2001.12.05 2285 196
38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2006.06.30 2289 215
37 2005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8] 2005.01.03 2300 229
36 민들레 - 김상미 [4] 2005.04.26 2314 217
35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 차주일 [1] 2005.09.29 2314 254
34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5 313
33 사랑 - 고영 [5] 2005.03.08 2366 219
32 가로등 - 한혜영 [1] 2006.03.27 2384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