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푸르른 소멸·40 [즐거운 놀이] - 박제영

2002.11.14 11:59

윤성택 조회 수:1143 추천:172

푸르른 소멸·40 / 박제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푸르른 소멸·40
                  - 즐거운 놀이  


        딸아, 가을 숲에 가자꾸나
        마침내 충분히 살았다 이윽고 지고 있는 것들 보여주마 물이었으니 물로 돌아가
      고, 흙이었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모르겠어요

        딸아, 가을 숲에 가자꾸나
        후툭 후투툭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빗소리, 바람소리, 낙엽소리, 벌레소리, 새소리, 짐승의 울음소리
        들려주마 마침내 모든 소리
        허이 헤이허 오호호호 오 오행, 만가(輓歌)로 화음됨을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가엾은 것 두려워하지 말거라 이것은 숲이 겨울을 준비하고 봄을 맞이하는 즐거
      운 놀이란다 언제고 아빠도 가을 숲이 될 것이야  그러니 딸아,  그때가 되면 슬퍼
      할 일이 아니라 오늘 이 놀이를 기억해야 할 것이야 즐거운 놀이를

        모르겠어요 자꾸 눈물이 나와요 이젠 집에 가고 싶어요



[감상]
이 혹독한 상영관 안에서, 지독히 빛과 입자로 명멸하는 시간에 축을 세우고 우리는 상영중입니다. 딸과 숲을 산책 하는 구도로 되어 있는 이 시는 한 생애가 곧 '놀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아이의 말이 시적 울림을 자아내는 이유는 놀랍게도 우주의 어떤 질서 앞에 나약한 인간의 단면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소재로 등장하는 두 성격의 미묘한 감정을 철학의 깊이까지 사유해 낸 점이 좋네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51 황실대중사우나 - 전윤호 2002.12.10 1166 191
350 공갈빵이 먹고 싶다 - 이영식 2002.12.09 1326 198
349 목수의 노래 - 임영조 2002.12.06 1188 167
348 태양의 칸타타 1 - 이윤훈 [1] 2002.12.05 1188 169
347 바람분교 - 한승태 2002.12.04 1190 179
346 그 집 앞 능소화 - 이현승 2002.12.03 1397 174
345 배꼽 - 이민하 2002.12.02 1317 191
344 11월의 밤 - 서지월 2002.12.01 1309 186
343 에덴의 동쪽 - 김상미 2002.11.29 1406 203
342 마을 - 김완하 2002.11.28 1361 191
341 그곳 - 이상국 2002.11.27 1278 216
340 스타킹 속의 세상 - 서안나 2002.11.26 1373 176
339 달빛 세탁소 - 최을원 2002.11.25 1313 194
338 싸움하는 사람을 보다 - 박진성 2002.11.21 1307 178
337 시 - 조항록 2002.11.20 1265 163
336 어물전에서 - 고경숙 2002.11.19 1208 180
335 물고기에게 배우다 - 맹문재 2002.11.16 1226 168
334 나는 여기 피어 있고 - 이순현 [1] 2002.11.15 1209 172
» 푸르른 소멸·40 [즐거운 놀이] - 박제영 [1] 2002.11.14 1143 172
332 찰나의 화석 - 윤병무 [1] 2002.11.13 1211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