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 이진명 / 『문학과사회』2003년 여름호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가 죽었다……
작년에도 그가 죽었는데
오늘 아침 그가
봄 애 신학기 때도 그가 죽었는데
그는 죽었구나……
아는 사람
전화하려면 못할 것도 없는 사이
전화 안 하고 지나가도 그만인 사이
우리는 이런 아는 사람 있지, 그러나
죽음도 안부도 언제부턴가 연락하지 않는
나는 정말 그를 알까, 그는 또 나를
일어나 종일 꾹 문 입 떼고 싶지 않았다
전화기를 몇 번인가 잡았지만 그만뒀다
평소의 습관이 모든 걸 이기게 놔뒀다
우리는, 그와 나는, 각자
어디선가 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한때 안 적 있었던 일은
더 모르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일어난 일
전화기를 제자리에 밀어놓고
소파 가생이에서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길이 갈리는, 갈리면, 더 이상 길이 없는
길 끊어진 무서움 같은 게 몰려오는데
무서움을 참고 들여다봤을까 어느 한 곳
나 이 년 전에 죽은 것을 그는 모르고
이른 아침 나 죽은 꿈을 꾸고 일어나
꾹 문 입 종일 떼고 싶어하지 않는다
무언가 무서운 것을 대하고 있는 듯한 그의 눈
아는 사람의 눈, 살아 있다
[감상]
이 시를 읽다보면 말미에 이르러 반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통할 수 없다는 것. 어차피 단절된 관계이니 누가 죽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우리는, 그와 나는, 각자/ 어디선가 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한때 안 적 있었던 일' 추억은 죄다 왜 전생처럼 아득한 것인지요. 나를 관통해온 시간 앞에서 이미 뒤쳐진 인연들. 사랑했다거나 미안했다거나가 정말 '더 모르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일어난 일'인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죽은 듯 살아 있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