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 이진명

2003.05.27 14:53

윤성택 조회 수:1048 추천:149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 이진명 / 『문학과사회』2003년 여름호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가 죽었다……
        작년에도 그가 죽었는데
        오늘 아침 그가
        봄 애 신학기 때도 그가 죽었는데
        그는 죽었구나……

        아는 사람
        전화하려면 못할 것도 없는 사이
        전화 안 하고 지나가도 그만인 사이
        우리는 이런 아는 사람 있지, 그러나
        죽음도 안부도 언제부턴가 연락하지 않는
        나는 정말 그를 알까, 그는 또 나를

        일어나 종일 꾹 문 입 떼고 싶지 않았다
        전화기를 몇 번인가 잡았지만 그만뒀다
        평소의 습관이 모든 걸 이기게 놔뒀다

        우리는, 그와 나는, 각자
        어디선가 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한때 안 적 있었던 일은
        더 모르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일어난 일

        전화기를 제자리에 밀어놓고
        소파 가생이에서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길이 갈리는, 갈리면, 더 이상 길이 없는
        길 끊어진 무서움 같은 게 몰려오는데
        무서움을 참고 들여다봤을까 어느 한 곳

        나 이 년 전에 죽은 것을 그는 모르고
        이른 아침 나 죽은 꿈을 꾸고 일어나
        꾹 문 입 종일 떼고 싶어하지 않는다
        무언가 무서운 것을 대하고 있는 듯한 그의 눈
        아는 사람의 눈, 살아 있다




[감상]
이 시를 읽다보면 말미에 이르러 반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통할 수 없다는 것. 어차피 단절된 관계이니 누가 죽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우리는, 그와 나는, 각자/ 어디선가 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한때 안 적 있었던 일' 추억은 죄다 왜 전생처럼 아득한 것인지요. 나를 관통해온 시간 앞에서 이미 뒤쳐진 인연들. 사랑했다거나 미안했다거나가 정말 '더 모르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일어난 일'인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죽은 듯 살아 있는 우리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51 불찰에 관한 어떤 기록 - 여태천 2003.07.01 988 201
450 낡은 사진첩을 보다가 - 권영준 2003.06.27 1163 168
449 염전에서 - 고경숙 2003.06.26 1070 177
448 별들을 읽다 - 오태환 2003.06.25 1264 193
447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 박정대 2003.06.24 1086 192
446 내외 - 윤성학 2003.06.23 1029 169
445 욕을 하고 싶다 - 주용일 2003.06.20 1162 176
444 나는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다 - 임동확 2003.06.19 1168 172
443 되돌아가는 시간 - 전남진 2003.06.17 1173 166
442 지하도에서 푸른 은행나무를 보다 - 서안나 2003.06.16 1048 164
441 구멍에 들다 - 길상호 2003.06.10 1123 154
440 낙마 메시지 - 김다비 2003.06.09 994 176
439 오이도 - 임영조 [2] 2003.06.04 1173 168
438 실종 - 한용국 2003.06.02 1064 157
437 우산을 쓰다 - 심재휘 2003.05.30 1267 163
»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 이진명 2003.05.27 1048 149
435 사과를 깎으며 - 김나영 2003.05.26 1063 151
434 나무의 손끝 - 신원철 2003.05.23 1037 167
433 석모도 민박집 - 안시아 2003.05.21 1070 155
432 만리동 미용실 - 김윤희 2003.05.20 1041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