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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 민박집 - 안시아

2003.05.21 14:37

윤성택 조회 수:1070 추천:155


「석모도 민박집」 / 안시아 / 『현대시학』2003 신인상 당선작 中  



        석모도 민박집



        바다에 꼬박꼬박 월세를 낸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나눠줄 광고지 한켠
        초상권을 사용해도 된다는 계약조건이다
        인적 드문 초겨울 바닷가,
        바다는 세를 내릴 기미가 없고
        민박집 주인은 끝물의 단풍처럼 입이 바짝 마른다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게 없다
        슬쩍 들이마신 공기와
        내 몫을 챙겨온 하늘
        게다가 무단으로 사용한 바람까지
        불평 없이 길을 내주는 백사장 위
        스물 몇 해 월세가 밀려있는 나는
        양심불량 세입자인 셈이다
        수평선을 끌어다 안테나를 세운 그 민박집
        바다가 종일 상영되는
        발이 시린 물새 몇 마리 지루한 듯 채널을 바꾼다
        연체료 붙은 고지서처럼 쾡한
        석모도 민박집에서
        내 추억은 몇 번이나 기한을 넘겼을까

        바닷가 먼지 자욱한 툇마루엔
        수금하러 밀려온 파도만 가끔 걸터앉는다


[감상]
'월세'만큼 참 고즈넉한 것도 없지요. 사글세로 살아본 적이 있다면  '가난'의 것보다 삶스러운 데 있는 추억이 더 떠올려질 것입니다. 겨울이면 바닷가 민박집을 찾아가는 화자, 거기에서 바다에 세 들어 사는 것을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채무관계를 아름다운 서정으로 바꿀 줄 아는 재능이 '수금하러 밀려온 파도'를 보게 합니다. 매해 겨울, 고지서를 찾으러 바다로 갈만한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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