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 / 임영조 / 『소월시문학상작품집』특별상 작
오이도
마음속 성지는 변방에 있다
오늘같이 싸락눈 내리는 날은
싸락싸락 걸어서 유배 가고 싶은 곳
외투 깃 세우고 주머니에 손 넣고
건달처럼 어슬렁 잠입하고 싶은 곳
이미 낡아 색 바랜 시집 같은 섬
―오이도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나는 아직도 그 섬에 가본 적 없다
이마에 '오이도'라고 쓴 전철을
날마다 도중에 타고 내릴 뿐이다
끝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둔 여자 같은 오이도
문득 가보고 싶다, 그 섬에 가면
아직도 귀 밝은 까마귀 일가가 살고
내내 기다려준 임자를 만날 것 같다
배밭 지나 선창 가 포장마차엔
곱게 늙은 주모가 간데라 불빛 쓰고
푸지게 썰어주는 파도 소리 한 접시
소주 몇 잔 곁들여 취하고 싶다
삼십여 년 전 서너 번 뵙고 타계한
지금은 기억도 먼 나의 처조부
오이도(吳利道) 옹도 만날 것 같은 오이도
내 마음 자주 뻗는 외진 성지를
오늘도 나는 가지 않는다, 다만
갯벌에는 나문재 갈대꽃 피고 지고
토박이 까치 무당새 누렁이 염소랑
나와 한 하늘 아래 안녕하기를.
[감상]
오이도행 전철을 타고 내리는 일상에서 삶의 편린과 생각 등을 '오이도'에 점철시킵니다. 이 시인이 타계하셨다는 얘길 들었을 때, 올봄 기억 하나가 내내 마음에 남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들렀던 곳이 '동학사'였습니다. 많은 시인들 중에 제일 어렸던 저에게 누군가 술 좀 사오라고 만 원짜리 하나를 건네더군요. 돈을 받아 들고 신발을 꺾어 신는데 부탁해라고 손을 드는 분이 임영조 시인. 한참을 걸어 산사춘 세 병을 사들고 그분의 자리에 술을 전해드렸을 때 살풋 웃으셨던. 그게 제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토박이 까치 무당새 누렁이 염소랑/ 나와 한 하늘 아래 안녕하기를'에서 풍경이 왜 자꾸 슬프게 아름다운 걸까요…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