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내 안의 골목길 - 위승희

2001.07.03 14:17

윤성택 조회 수:1517 추천:269

위승희/ 1998 현대시 등단, 시음반 <사이렌 사이키>를 김정란 교수와 출반


        내 안의 골목길
                -痛點11



        오늘도 걷는다, 유행가처럼
        코가 조금 벗겨진 금강구두를 신고
        아주 천천히 길이 당기고 있는 내 몸
        그러나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네
        등 뒤의 길은 내 발목을 끌어당기고
        눈 앞의 길은 안개의 스펀지로 나를
        흡인하려 하네
        나는 곧 보이지 않으리
        그리하여 골목에서 길을 잃은 여자


        외눈박이 가등 아래, 안개빛
        고통이여, 나를 깨어있게 하는 자욱한
        고통이여, 더 큰 발소리로 내게로 오라
        허물어질 듯한 골목 안의 지나친 고요
        네 발소리라도 울려준다면
        그것에 귀기울여 나는 즐겁겠네


        몸 비비는 나의 침묵을 네 양 팔에 들려주고
        시들은 달빛 한 잎 떨어져
        내 어두운 옷 위에 나부낀다면
        밤의 망토 안에서 너를 껴안으리
        지친 나의 눈빛과 달빛 한 잎도 외롭지 않겠네
        아, 집시를 닮은 안개의 춤이여
        외눈박이 가등이 눈을 뜬
        내 안의 골목길이여



[감상]
누구나 다 돌아나온 적이 있는 골목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떤 길찾기라면 이 시 속의 골목길은 화자의 내면의 길입니다. 골목 안은 "지나친 고요"가 배를 깔고 숨죽입니다. 그리하여 적막한 그 길에 누군가 와 준다면 "밤의 망토 안에서 너를 껴안으리"의 욕망의 근저와 맞닿아 있습니다. 외로움이 설핏 배여 나오는 시입니다. 저도 대학시절, 자취방 골목에서 나올 때 첫 번째 마주치는 여자와 사랑을 하자라고 치기를 부렸던 적이 있었지요. 물론 나오자마자 동네 수퍼 할머니가 인사를 해왔지만 말이지만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31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2001.06.11 1781 327
1130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2001.06.12 1618 267
1129 민들레 - 이윤학 2001.06.13 1803 285
1128 아카시아 - 박순희 2001.06.14 1757 313
1127 4월 - 한용국 [1] 2001.06.15 1565 301
1126 그린 듯이 앉아 있는 풍경 - 박형준 2001.06.18 1534 280
1125 그 숲엔 무수한 뼈가 있다 - 김충규 2001.06.19 1443 311
1124 지푸라기 허공 - 나희덕 2001.06.20 1515 287
1123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2001.06.21 1636 276
1122 내 품에, 그대 눈물을 - 이정록 2001.06.22 1488 268
1121 풀잎 다방 미스 조 - 정일근 2001.06.27 1414 265
1120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649 325
1119 그대들의 나날들 - 마종하 2001.06.29 1522 319
1118 사랑한다는 것 - 안도현 2001.07.02 1970 274
» 내 안의 골목길 - 위승희 [2] 2001.07.03 1517 269
1116 중독 - 조말선 2001.07.05 1617 288
1115 꿈 101 - 김점용 2001.07.06 1618 279
1114 첫사랑 - 하재봉 2001.07.09 1892 306
1113 사랑니 - 고두현 [1] 2001.07.11 1841 258
1112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2001.07.12 1620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