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겨울나무 - 이기선

2008.09.11 14:51

윤성택 조회 수:1739 추천:100

「겨울나무」 / 이기선 ( 2003년『시와반시』로 등단)


        겨울나무

        병이 나을 것 같지 않아 편지를 씁니다
        맞바람의 뒤끝은 맵기도 하네요
        여긴 한 번 스쳐간 사랑이 다시 찾아오는 법이 없는 곳이랍니다
        분명히 눈이 내렸었는데 지금 보니 서 있는 자리가 젖어 있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이 이렇게 발목을 적시는 날들 한가운데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기쁨 때문에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어제와 다른 자리가 아파오는 것도 위로가 되는군요
        요즘도 쪽문은 열어둔 채 지내고 있습니다
        끝까지 꾸지 않은 꿈이 남아 있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감상]
강원도 화천 어디쯤 가다가 겨울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10년 후쯤 지구 온난화로 이 한반도에서 겨울이 사라져 그야말로 ‘그리운 겨울’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오랫동안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해 청춘의 화인(火印) 같았던 열망에게 미안해지는 날입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이마에 짚어지는 서늘한 열기와 새벽 공기, 쓸쓸하게 추스르는 의지 같은 것이 전해집니다. 단지 아픈 것만이 병은 아닐 것입니다. 꿈을 잊은 채, 살아내는 것에만 급급한 무료하고 반복적인 지금의 일상이 오히려 ‘병’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문학에 대한 심경이 이 시와 같습니다. ‘요즘도 쪽문은 열어둔 채 지내고 있습니다/ 끝까지 꾸지 않은 꿈이 남아 있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91 오지 않네, 모든 것들 - 함성호 2001.08.17 1527 216
1090 선천성 그리움 - 함민복 2001.08.20 1451 207
1089 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 - 김충규 2001.08.21 1180 195
1088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 김혜경 2001.08.22 1369 206
1087 쓸쓸한 날에 - 강윤후 2001.08.23 1651 211
1086 하지 - 조창환 2001.08.24 1259 249
1085 나에게 사랑이란 - 정일근 2001.08.27 1715 218
1084 겨울삽화2 - 천서봉 2001.08.28 1454 191
1083 세상 먼 바깥쪽에서 - 장영수 2001.08.29 1267 212
1082 그런 것이 아니다 - 김지혜 [2] 2001.08.30 1535 223
1081 가을에는 - 최영미 [3] 2001.08.31 2431 235
1080 반성 16 - 김영승 2001.09.03 1273 203
1079 목도장집이 있는 길목 - 최승철 2001.09.04 1242 178
1078 고별 - 김종해 2001.09.05 1212 204
1077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 강연호 [7] 2001.09.07 1411 179
1076 그믐밤 - 신혜정 2001.09.10 1352 210
1075 첫사랑 - 진은영 [2] 2001.09.11 1794 190
1074 비망록 - 김경미 2001.09.12 1375 201
1073 등꽃 - 김형미 2001.09.13 1509 193
1072 가장 환한 불꽃 - 유하 2001.09.17 1723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