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방황하는 피 - 강기원

2011.03.09 17:48

윤성택 조회 수:1975 추천:127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강기원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 / 《민음의시》162

          방황하는 피

        네 핏줄은 고압선이 분명해
        바람에 부르르 떠는
        얽히고설킨 전선들로
        넌 늘 지지직거리는
        난시청 지역
        땀에 젖은 몸으로
        널 만지는 건
        금물
        음표처럼 고압선 위를 가볍게 건너다니는
        작은 새의 발뒤꿈치가 보이지만

        네 핏줄은
        조율 안 되는 현이 분명해
        조이면 끊어지고
        풀어 놓으면
        소리를 놓아 버려
        활 잃은 부주의한 악공처럼
        널 품에 안고
        난 자꾸 막막해져
        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흘러 다니는 넌
        어느 강의 지류인지
        부유하는 넌
        어느 안개의 족속인지
        어느 유목의 피인지

        도무지 소문 같은 널 따라 도는
        나는,


[감상
]

피의 순환에서 착안, 선의 영역까지 상상력을 확장하는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고압선과 악기의 현으로 이어지는 짧고 간결한 문장의 배치에서 스파크가 일듯 의미들이 반짝입니다. 피가 갖고 있는 형질에는 유전적으로 그 어떤 운명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방황하는 피를 따라 도는 ‘나’의 등장은 이렇듯 수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그러하여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마련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31 죄책감 - 신기섭 2006.05.29 1871 243
130 춤 - 진동영 2006.06.21 1730 243
129 옥평리 - 박라연 2002.08.14 1380 244
128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2001.08.04 1241 245
127 은박 접시 - 정원숙 [2] 2005.07.15 1437 245
126 장지 - 박판식 2001.10.09 1448 247
125 취미생활 - 김원경 [1] 2006.03.24 1928 247
124 축제 - 이영식 [3] 2006.07.11 2034 247
123 낡은 의자 - 김기택 [1] 2001.07.30 1574 248
122 눈길, 늪 - 이갑노 2006.03.29 1659 248
121 하지 - 조창환 2001.08.24 1259 249
120 별 - 김완하 2002.08.12 2923 249
119 책들 - 강해림 2006.07.07 1882 249
118 마포 산동네 - 이재무 2001.05.08 1695 250
117 聖 - 황학주 2001.10.18 1310 250
116 고백 - 정병근 [1] 2005.08.17 2711 250
115 흔적 - 배영옥 [2] 2005.11.16 2277 250
114 사랑은 - 이승희 2006.02.21 2977 250
113 날 저문 골목 - 안숭범 2006.04.07 1612 250
112 해바라기 - 조은영 [1] 2005.11.01 3023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