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강기원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 / 《민음의시》162
방황하는 피
네 핏줄은 고압선이 분명해
바람에 부르르 떠는
얽히고설킨 전선들로
넌 늘 지지직거리는
난시청 지역
땀에 젖은 몸으로
널 만지는 건
금물
음표처럼 고압선 위를 가볍게 건너다니는
작은 새의 발뒤꿈치가 보이지만
네 핏줄은
조율 안 되는 현이 분명해
조이면 끊어지고
풀어 놓으면
소리를 놓아 버려
활 잃은 부주의한 악공처럼
널 품에 안고
난 자꾸 막막해져
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흘러 다니는 넌
어느 강의 지류인지
부유하는 넌
어느 안개의 족속인지
어느 유목의 피인지
도무지 소문 같은 널 따라 도는
나는,
[감상]
피의 순환에서 착안, 선의 영역까지 상상력을 확장하는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고압선과 악기의 현으로 이어지는 짧고 간결한 문장의 배치에서 스파크가 일듯 의미들이 반짝입니다. 피가 갖고 있는 형질에는 유전적으로 그 어떤 운명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방황하는 피를 따라 도는 ‘나’의 등장은 이렇듯 수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그러하여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마련입니다.
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