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렁뱅이 하느님」/ 정우영/ 《시와정신》 2004년 봄호
비렁뱅이 하느님
어느 밤중이었다. 사람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와 패트병과 개똥이 지천
으로 널린 빈터에 갑자기 그가 스며들었다. 그는 쓰레기를 치우고 패트
병을 굴리고 흙으로 개똥을 덮었다. 그런 다음 햇살을 불러들였다. 햇살
은 낮게 떠다니며 빈터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빈터가 데워지자, 그는 꽃
씨와 풀씨들을 날라왔다. 꽃씨와 풀씨들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빈터
에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때를 맞추어 그는 구름
도 데려와 보슬비를 뿌리게 했다. 빈터에 앙증맞은 새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빈터가 푸른빛으로 일렁이자 그는 슬몃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부랴부랴 물을 준다, 거름을 준다,
부산스러웠다. 거기에 웬 비렁뱅이가 비칠비칠 걸어오자, 사람들은 더
러워 못 보겠다는 듯 무섭게 비질을 했댔다.
[감상]
나도 어쩌면 당신에게 비질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관심과 무관심 사이 이처럼 꽃들은 피고 봄이 와도 나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던 건 아닌지…. 이 시를 읽으면서 말미에 나를 발견한 듯 싶어 마음이 화끈거렸습니다. 시는 이렇게 낮은 곳에서 의미가 더욱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