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진다
버즘나무 널따란 잎사귀들이 마구 떨어져 날린다
개태사 앞 향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마당에 기왓장이 나뒹군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키 큰 소나무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나무들조차
내게로 몰려오고 있다
이때 폭풍은 나무의 편이다
나무들은 폭풍의 힘을 빌려 내게로
침입하려 하고 있다
속이 울렁인다 저 나무들의 혼이 들어오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머리칼에 바람이 갈가리 찢긴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나와
약한 나무들의 혼을 찾아 멀리 달려가고 있다
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감상]
태풍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은 심장에까지 가 닿습니다. 글자로 읽어내는 詩는 그야말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고, 발견의 다른 이름입니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이 질문에서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안에 의인법적 힘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내내 바람 속에 있어야 합니다. 끝없는 호흡을 통해 바람과 내통하며 몸의 안과 밖을 '무엇'으로 살게 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숨질은 바람이고 심장은 숲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바람이 왜 내게로 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