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2004.07.13 17:37

윤성택 조회 수:1279 추천:160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진다
        버즘나무 널따란 잎사귀들이 마구 떨어져 날린다
        개태사 앞 향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마당에 기왓장이 나뒹군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키 큰 소나무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나무들조차
        내게로 몰려오고 있다
        
        이때 폭풍은 나무의 편이다
        나무들은 폭풍의 힘을 빌려 내게로
        침입하려 하고 있다
        
        속이 울렁인다 저 나무들의 혼이 들어오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머리칼에 바람이 갈가리 찢긴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나와
        약한 나무들의 혼을 찾아 멀리 달려가고 있다
        
        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감상]
태풍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은 심장에까지 가 닿습니다. 글자로 읽어내는 詩는 그야말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고, 발견의 다른 이름입니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이 질문에서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안에 의인법적 힘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내내 바람 속에 있어야 합니다. 끝없는 호흡을 통해 바람과 내통하며 몸의 안과 밖을 '무엇'으로 살게 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숨질은 바람이고 심장은 숲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바람이 왜 내게로 왔을까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31 2007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3] 2007.01.04 2019 160
230 스며들다 - 권현형 2004.08.04 1396 160
»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2004.07.13 1279 160
228 미싱 - 이혜진 2004.07.12 1132 160
227 못질 - 장인수 2003.11.26 1123 160
226 경비원 박씨는 바다를 순찰중 - 강순 2003.04.30 938 160
225 생선 - 조동범 [1] 2003.03.21 1166 160
224 공중의 유목 - 권영준 [1] 2003.02.04 888 160
223 아지랑이 - 정승렬 2002.04.01 1198 160
222 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 최갑수 2007.02.27 1307 159
221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 이영광 2003.10.23 1233 159
220 인생 - 박용하 [2] 2003.10.10 1857 159
219 범일동 블루스 - 손택수 [1] 2003.02.14 1296 159
218 사랑 - 김요일 2011.04.04 2461 158
217 불타는 그네 - 신영배 [1] 2007.05.08 1242 158
216 때늦은 점심 - 이지현 [1] 2003.04.02 1055 158
215 묵음의(默音) 나날들 - 은 빈 2003.02.12 964 158
214 여자의 육체 - 이성복 2002.12.27 1335 158
213 밤 골목 - 이병률 2002.11.12 1062 158
212 절정 - 함성호 2011.04.25 4059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