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2004.07.13 17:37

윤성택 조회 수:1280 추천:160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진다
        버즘나무 널따란 잎사귀들이 마구 떨어져 날린다
        개태사 앞 향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마당에 기왓장이 나뒹군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키 큰 소나무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나무들조차
        내게로 몰려오고 있다
        
        이때 폭풍은 나무의 편이다
        나무들은 폭풍의 힘을 빌려 내게로
        침입하려 하고 있다
        
        속이 울렁인다 저 나무들의 혼이 들어오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머리칼에 바람이 갈가리 찢긴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나와
        약한 나무들의 혼을 찾아 멀리 달려가고 있다
        
        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감상]
태풍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은 심장에까지 가 닿습니다. 글자로 읽어내는 詩는 그야말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고, 발견의 다른 이름입니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이 질문에서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안에 의인법적 힘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내내 바람 속에 있어야 합니다. 끝없는 호흡을 통해 바람과 내통하며 몸의 안과 밖을 '무엇'으로 살게 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숨질은 바람이고 심장은 숲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바람이 왜 내게로 왔을까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651 집들의 뿌리 - 길상호 2004.07.27 1296 175
650 만선 - 이동호 2004.07.23 1275 162
649 홍시 - 이경교 [1] 2004.07.21 1406 211
648 다시 죽변에 가서 - 임동윤 2004.07.20 1310 187
647 내 가슴의 무늬 - 박후기 2004.07.16 2162 223
646 손잡이 - 김은규 [2] 2004.07.14 1310 179
»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2004.07.13 1280 160
644 미싱 - 이혜진 2004.07.12 1132 160
643 재촉하다 - 이규리 [2] 2004.07.02 1304 171
642 나무에게 - 양현근 [1] 2004.07.01 1574 172
641 그리운 가족 - 박판식 2004.06.29 1502 194
640 꽃을 만드는 여자 4 - 김은덕 2004.06.25 1247 170
639 물푸레나무라는 포장마차 - 이정록 [1] 2004.06.23 1244 161
638 네트워크 - 정학명 [1] 2004.06.22 1038 177
637 과월호가 되어 버린 남자 - 한용국 2004.06.21 1081 188
636 저, 모래씨앗 - 김수우 2004.06.18 1193 177
635 프랑켄슈타인 - 김순선 2004.06.17 1089 174
634 댄스 파티 - 이정주 [1] 2004.06.16 1056 171
633 종각역 - 조정 2004.06.15 1234 195
632 신의 카오스이론 - 김연숙 [4] 2004.06.14 1186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