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비닐하우스 밤기차 - 이승주

2011.02.21 10:22

윤성택 조회 수:1089 추천:116


《위대한 표본책》/  이승주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서정시학 시인선》038

          비닐하우스 밤기차

        산이 강에 들어
        강과 산이 아득히 저물면
        객실마다 불을 켜고
        사방에서 기차들이 모여든다
        오래 지켜보았지만 그 기차들이 떠나는 걸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다
        기차는 언제나
        우리가 잠든 사이에 기적을 울리며 떠났다
        잠 깨기 전으로 돌아왔다
        은박지처럼 깔린 달빛의 바다를 헤쳐
        푸른 기차를 끌고 기관사는
        어디로 닿아 왔는지
        어디로 돌아온 것인지
        잠에게 물을 수 없다
        깨고 나면 방울벌레들은 어디 간이역에서 내리고 없지만
        깻잎, 풋고추들에게 물을 수 없는
        우리들 꿈의 무박(無泊)의 기차
        어느새 돌아와 곤한 잠에 빠진 기차 속에서
        아침 안개를 헤치고 늙은 기관사 걸어나오고 있다
        

[감상]

산이 강에 드는 풍경이 고즈넉합니다. 강에 온전히 산이 비칠 수 있을 때는 강물이 일지 않는 바람 없는 어느 저녁이겠지요. 그 저녁은 비닐하우스 길게 이어져 있는 것도 밤기차가 됩니다. 비닐하우스 안 탑승한 풋것들, 벌레들 모두 이 세상으로 여행 온 방문객입니다. ‘기차는 언제나/ 우리가 잠든 사이에 기적을 울리며 떠났다’ 아스라한 표현처럼, 저 안의 식물들에게 우리는 어느 간이역 불빛일 뿐입니다. 평생을 논과 밭을 일구며 그 좌석에 식물들을 태워주었던 아버지, 그 늙은 기관사가 아름답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 비닐하우스 밤기차 - 이승주 2011.02.21 1089 116
70 시,시,비,비 - 김민정 2010.01.16 1089 116
69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 허수경 2009.11.04 917 116
68 검은 방 - 박장호 2008.10.15 1258 116
67 개인의 질량 - 이산 2007.12.06 1434 116
66 매포역 - 전형철 [1] 2007.11.06 1210 116
65 태양의 계보 - 홍일표 2007.11.05 1128 116
64 빈 손의 기억 - 강인한 2009.11.14 926 115
63 밤의 연약한 재료들 - 이장욱 2008.11.03 1384 115
62 사물의 말 - 류인서 2008.02.28 1320 115
61 퉁소 - 김선우 2007.10.12 1217 115
60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2011.01.28 1259 114
59 기록들 - 윤영림 2009.02.16 1061 114
58 도망자 - 이현승 2007.10.17 1101 114
57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56 로컬 버스 - 김소연 2010.01.19 952 113
55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6 112
54 연리지 - 박소원 [1] 2011.01.07 939 112
53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52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