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2004.02.28 14:30

윤성택 조회 수:1573 추천:31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빽빽하게 들어찬 어둠을 솎아내느라
        형광등 불빛은 가늘게 떨고 있다
        그 경계를 잘라내는 환풍기는
        울음이 엉겨 잘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이곳을 깨우기 위해 사이렌은
        입구에서 검은 침묵을 매만진다
        누구나 지상과 멀어지고 싶지 않듯
        지하로 지하로 차를 몰고 내려온 이는
        잘못 든 길처럼 숙명적이다
        그가 홀연 빠져나와 차 문을 닫을 때
        지하층 전체에 일순 울리는 소리,
        누군가 들뜬 페인트처럼 후들거리며
        벽면에 기댄다 통곡이 지루하게
        계단으로 이어진다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고 우회와 우회를 거듭하며
        나선 방향으로 낙하한 하역의 공간,
        지하로 내려갈수록 묵직한 나사가
        조여오고 있다 그가 못질하듯
        구두 소리로 걸어나간다 깊은 밤처럼
        고요한 지하주차장, 길이와 폭으로
        테두리를 두르던 주차선이 문득
        영정 사진에 가 있다 또 누군가
        차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 시집 《리트머스》(문학동네) 中

 

윤성택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리트머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 『그사람 건너기』.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여행 2010.12.31 2040 135
공지 타인 2008.02.12 2337 112
공지 아틀란티스 2007.04.12 1947 56
공지 FM 99.9 2004.09.26 2424 85
공지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2004.12.15 2644 125
공지 탈수 오 분간 2004.06.01 2451 100
공지 로그인 2005.09.01 2314 84
공지 스트로 2003.09.18 2358 88
공지 후회의 방식 2005.03.18 1572 127
공지 장안상가 2004.06.03 2410 87
»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2004.02.28 1573 31
공지 검은 비닐 가방 2006.02.15 1773 55
공지 농협창고 2006.07.27 1735 55
61 언제나 영화처럼 [1] secret 2005.12.11 361 7
60 한밤의 제우스 secret 2005.09.01 480 13
59 secret 2005.02.28 601 23
58 별의 기억 secret 2005.02.28 782 28
57 동물성 모니터 secret 2005.02.28 357 24
56 secret 2004.12.15 17 0
55 리트머스 secret 2004.11.25 270 11
54 재개발지구 암각화 secret 2004.11.25 170 10
53 왼손의 꿈 secret 2004.10.19 297 11
52 불확정성 시간에 대하여 secret 2004.09.26 277 11
51 밤의 러닝머신 secret 2004.06.14 408 11
50 Buy the way secret 2004.06.09 388 11
49 낚시論 secret 2004.06.07 552 17
48 포장마차에 들고 싶다 secret 2004.06.02 39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