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곳이 있어 몸을 소포처럼 내려놓는다
온전히 배달되는
기차라든가 버스라든가 전철에
담겨 있으면
나 또한 소인이 찍힌 우편 같다
죽음이라는 배송처가 서명을 받아내면
뜯어본 사연이 환등처럼 어른거릴 텐데
모두 휴대폰을 열고 무언가에 골몰해할 때
그 옛날 펼친 책 한 권이 읽어주던
낯빛이 설핏 스친다
글자를 알게 된 후 글자가 나를 만나러
행간을 걸어왔던 설렘 같은 거
누구나 과거 어딘가에서는
배지(校標) 달고 갈피 접은 책을
펼쳤던 적 있었으므로
차창이 노끈 같은 빗줄기에 단단히 묶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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