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마주침

2009.03.24 00:13

윤성택 조회 수:233



아침 산책길에 붉은 꽃과 마주쳤다. 그냥 덤불인 줄만 알았던 길섶의 수풀이 진달래였다니. 파카를 껴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는 내가 저들에게는 어떤 군락으로 보였을까. 산행객들은 땅을 쿵쿵거리며 저 봉오리들을 조금 더 열게 했을지도.
증명서 같은 꽃 핀 자리마다 아침볕이 직인처럼 바닥에 눌러 붙어 있다. 길이 있는 것 같아 좀더 걸었던 그 끝에 촉촉하고 검은 눈빛의 고라니가 있었다. 고라니나 나나 서로 놀라 멈칫 했던 그 짧은 순간, 기류로 관통하는 생애를 본다. 예감은 늘 미래를 과거로 만든다. 나는 죽어서본 이 봄을 기억하고 있나. 놀란 피부 같은 봉분들. 시간이 쿵쿵거리며 달아나고나면 이 산도 허물어져 모래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진행 중인 눈빛과 눈빛의 순간. 누가 먼저 눈을 떼나, 이 지구에서.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45 글이 읽으러 기회를 만난다 2024.02.22 29
144 영화로운 2024.01.26 31
143 보랏지다 2023.12.28 45
142 인생이 통속으로 취했거늘 2024.02.01 49
141 신호등에 걸려 서 있다 보면 2024.03.13 52
140 받아 두세요 일단 2022.12.21 66
139 소포 2023.01.18 74
138 시나리오 2023.02.24 75
137 달을 깨 라면 끓이고 싶다 2022.05.24 81
136 시시때때로 2022.02.23 82
135 냉장고 2023.09.07 86
134 음악 2022.03.23 90
133 시고 시인 2021.12.01 92
132 가고 있다, 그렇게 새벽이 2022.02.12 92
131 시간의 갈피 2022.04.19 93
130 허브 2021.08.25 97
129 봄 낮술 2022.04.27 102
128 이글거림 너머 2021.06.09 109
127 poemfire.com 2023.05.10 112
126 버퍼링 2021.10.06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