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건널목

2013.08.22 22:38

윤성택 조회 수:283

저녁의 거리가 후미질수록 신호등이 유독 붉다. 뒷면의 검은 사위를 꽃대처럼 받치고 피는, 건너올 수 없는 그 한때의 눈시울이 있다. 사랑은 어느덧 기다림에 부기(附記)된다. 얼마간 그렇게 서로 서 있어야 횡단할 수 있다. 꽃이 피었다 시들고 나무의 새순이 낙엽으로, 노인이 신생아로, 사막이 초원으로 변하는 그 당분간 우리는 마주 서 있는 것이다. 횡단보도에 현을 긋듯 헤드라이트의 활시위가 연주되는 날들, 쉴 새 없이 교차되는 저 선율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잔금을 따라 핏발이 차오르고 눈동자 한 가운데 시간이 빨려 들어간다. 후미진 비밀을 비추며 제 안으로 저무는 건널목 저편, 당신이 천천히 타인을 건넌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25 버찌 2022.06.17 116
124 겨울에게 쓰는 편지 2022.01.05 123
123 서해 바다에 가서 저녁놀을 보거든 2021.09.13 126
122 막걸리 한 잔 file 2021.06.22 150
121 열대야 2013.08.05 171
120 태내의 멀미 2022.08.09 171
119 드라마 2008.11.06 181
118 글쓰기 2010.01.12 187
117 한 잔 하늘 2010.10.25 189
116 발굴 2013.07.31 193
115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2 2011.01.11 197
114 바라는 것 2009.11.09 200
113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1 2011.01.10 203
112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4 2011.01.13 205
111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8 2011.02.08 205
110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3 2011.01.12 211
109 감기 2009.03.25 213
108 그늘의 나무 2008.11.10 215
107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9 2011.02.11 216
106 2009.11.21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