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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

2013.08.22 22:38

윤성택 조회 수:590

저녁의 거리가 후미질수록 신호등이 유독 붉다. 뒷면의 검은 사위를 꽃대처럼 받치고 피는, 건너올 수 없는 그 한때의 눈시울이 있다. 사랑은 어느덧 기다림에 부기(附記)된다. 얼마간 그렇게 서로 서 있어야 횡단할 수 있다. 꽃이 피었다 시들고 나무의 새순이 낙엽으로, 노인이 신생아로, 사막이 초원으로 변하는 그 당분간 우리는 마주 서 있는 것이다. 횡단보도에 현을 긋듯 헤드라이트의 활시위가 연주되는 날들, 쉴 새 없이 교차되는 저 선율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잔금을 따라 핏발이 차오르고 눈동자 한 가운데 시간이 빨려 들어간다. 후미진 비밀을 비추며 제 안으로 저무는 건널목 저편, 당신이 천천히 타인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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