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버퍼링

2021.10.06 14:05

윤성택 조회 수:116

새벽에 깬 잠이 몸을 뒤척이게 한다. 빗소리 아득히 들려 나는 강물의 물고기처럼 한쪽으로 휘다 다른 편으로 돌아눕는다. 어쩌면 내 정신이 묻은 어류가 세상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 컴퓨터의 버그처럼. 겹친 계약서 뒷면 푸른 글씨처럼. 동시에 깨어난 이 새벽 사람처럼. 그 어떤 기시감은 어딘가에서 전해져온 메시지이므로. 이 세상에서 탈퇴하게 되면 나는 어떤 메시지로 읽혀질까. 내가 남긴 글이며 생각이 텍스트로 온전한데 고요히 사라졌다면. 까만 눈동자의 신생아를 볼 적마다 나는 눈먼 사람이 된다. 지구의 시차를 견디기 위해 황금똥을 누거나 종일 잠으로 몸을 회복하는 신생아들. 그들은 모두가 비슷하지만 다른 미션을 쥐고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내가 진정 나라고 느낄 때 몸이 폭파되는 어느 영화의 결말처럼, 나는 내 눈이 불안하다. 나 아닌 나로 동기화되기까지 얼마나 타인이 되어야 하나. 기억이 주입되는 알약을 삼키고 캡슐에 들어가 한 시간을 자고나니 빙하기가 끝났다. 과거로 갈 수 없다면 미래를 과거로 차용해야 가능하다. 그러니 나는 이미 미래가 꿈꾸고 있는 어느 날이다. 나는 이 메시지가 때때로 두절되길 바란다. 여기는, 이 새벽은, 버퍼링이 길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25 철(撤) file 2013.12.19 747
124 무게 file 2014.03.07 742
123 새벽 두 시 2010.03.04 732
122 변신 file 2014.01.28 724
121 생각이 결려 file 2014.03.07 721
120 기억은 난민 file 2014.04.09 710
119 7cm 눈 file 2013.12.16 709
118 한 사람 file 2013.12.10 633
117 마음일기 1 2008.01.31 629
116 운명도 다만 거처 2019.03.20 603
115 마음일기 3 2008.02.12 593
114 접촉이 두려운 계절 2020.02.08 571
113 스마트한 봄날 2020.04.23 542
112 여행 2008.12.23 539
111 그대 생각 file 2013.10.25 521
110 밀교 2020.03.25 470
109 一泊 2013.10.10 463
108 불현듯 내가 2008.12.04 439
107 거래 file 2013.12.31 432
106 마음일기 2 2008.02.02 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