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시멘트는 늘 그 색깔에서 집착을 놓아준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을 때 집들은 기억을 습기로 어루만지며 서로의 벽이 된다. 서로 다른 벽이 만나서 같은 색으로 퇴색해가는 골목길. 이 길에서는 함부로 담겨진 흙도 싹을 틔운다. 그리고 살아간다. 아무도 없는 적막이 그 계단의 양분이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별을 받아들일 것 같은 벽 앞에서, 얼룩의 느낌보다 얼룩을 벗고 있는 벽의 느낌으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한때 벽이었던 수많은 망설임들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