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 이동호/ 《시인시각》2006년 여름호
폐가(廢家)
감나무 가지에 홍시처럼 매달려 있는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우체부였다
감나무에는 우표가 무성했으므로 그의 혼은
무사히 하늘로 잘 배달되었으리라
감나무는 그의 육신을 양분으로 더욱 붉었지만
곧 지상으로 힘없이 난무했다
그에 대한 억척의 소문들도 모두 붉어갔다
경찰은 경찰답게 그의 주검에 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으로 귀납 추리했고
마을은 이웃답게 주검에 대한 연민을
혀 밑에 묻었다 담벼락 밖으로
뚝뚝 떨어진 소문일수록 바람에 실려가
산을 붉게 물들였다
철새들이 날아올라 서녘하늘에
단풍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고 지나갔다
집은 끝내 함구했다
그가 가꾸다만 황폐해진 가을 속으로
참새들이 하나 둘 몰려들어 혀를 찼다
바람이 그가 매달려있던 가지를 세차게 흔들어놓았다
그가 신고 다닌 마당의 발자국 속으로
밤새 서리 내리고,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이
잡초 속에서 마지막으로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해 겨울
답장처럼 눈이 내렸고
지붕은 상복을 입었다
상주처럼 쓸쓸하게 서 있던 감나무의 가지가
툭 꺾이고, 최후로 그가 벗어둔 장화 속으로
침묵이 고여들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그의 발자국이 하나 둘 새로
돋아났다
[감상]
목을 매 자살한 사내에 대한 묘사가 남다릅니다. 그리고 붉은 색의 강렬한 이미지 끝에 <상복>으로 환기되는 색감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사내가 죽고 그예 버려진 빈집의 황황하고 쓸쓸한 가을 겨울이 다큐멘터리처럼 지나갔다고 할까요. 상상력을 토대로 하면서도 그것을 현실감 있는 서정으로 구축하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특히 <마당을 가로질러/ 그의 발자국이 하나 둘 새로/ 돋아났다>에서 상상되는 <유령>의 이미지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정의 하는 죽음은 일정한 질서와 원리 속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영 고인을 추억 속에서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