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담장의 커브』/ 이수명/ 민음사
태양과의 통화
나는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쏜다. 나의 통화는 너무 길었다. 구불구불한
전화선을 타고 내 얼굴은 흘러내렸다. 나는 내 얼굴을 향해 화살을 쏜
다. 미세한 먼지들이 나를 감싸고 자꾸 내 눈 속으로 들어온다. 먼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장들이 사슬을 풀고 있다. 거대한 공장과 공장 사이
로 내 얼굴은 사라진다. 나는 질식한 머리카락들을 집어 올린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태양이 햇빛 총을 쏘고 있다. 총구들이 자꾸 내 눈 속으로
걸어들어온다. 나는 너무 많이 통화했다. 끔찍하게 늘어져 있는 태양의
전화선들, 나는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쏜다.
[감상]
천편일률적인 것이 시가 될 순 없습니다. 무언가 새로움이 전달되었을 때, 시는 울림이며 감동입니다. 이 시는 "태양"에 대한 자신만의 시선이 좋습니다.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구불구불한 전화선을 타고 내 얼굴은 흘러내렸다"는 표현. 결국 태양 또한 소통의 것이며, 그 소통은 "전화"라는 발상은 새롭고 참신합니다. 사물을 정의된 대로 바라보지 말고 새롭게 바라보기.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