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다』/ 황지우/ 풀빛
12월의 숲
눈 맞는 겨울나무숲에 가 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연대(連帶)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숲은
목탄화(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숲은
성자(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나무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버리고
인근 산의 적설량(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감상]
날숨과 들숨의 허연 입김으로 마치 나도 눈 맞는 겨울나무 숲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막막한 글자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담아 내는 詩, 때로는 다리품을 팔지 않아도 여행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