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이선영 / 문학과지성사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나는 종이 위에 나를 한자 한자 새겨넣는다
나는 이리저리 흐트러진 나의 육체를 끌어모아 글
자 속에 집어넣고 뚜껑을 꽉 닫는다
한글자 한글자 씌어질 때마다 한치 한치 오그라드는
내 육체는 수천 수만 가지 글자들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 만들어지는 글자들마다에 나의 육체는 자신의
새로운 집을 짓는다
나는 수만 채의 집을 거느리고 산다,
나의 살점을 나누어 조금씩 떼어내서는 각 집의 관
리인으로 둔 채
그런데 이즈음 내 육체는 "이 안은 왜 이리 어둡고
갑갑한가?"라고 말한다
나는 공들여 지은 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늙어 눈이 어두워진 도장공처럼
나는 지금 끙끙대며 나를 글자 속에 구겨넣으려 안
간힘쓴다
내 커진 몸집의 풍요를 맛본 내 육체가 더 이상 좁
은 집에 살려 하지 않기에
[감상]
글자 속에 나를 집어넣는 행위는 연금술처럼 달콤한 미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짓에 매달려 몇 년째 글자들의 주위를 서성거렸습니다. 이 시는 그런 내면의 심경을 보여준 시로 읽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좀더 삶 쪽으로 낮춰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