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마을버스/ 신인상 수상작, 최승철 / 2002년 『작가세계』 봄호
신림동 마을버스
밥알 닮은 눈빛들 손잡이를 찾는다
구두굽이 어느새 한쪽으로 찌그러 들었다
창 밖으로 긴 머리 여자가 울고 있다
곧 나타난 취중의 사내는 자꾸 여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애쓴다
이혼한 형이 생각나려는 순간
호프와 양주의 입간판이 좌회전에 쓸린다
마을버스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순대 속처럼 하나의 움직임으로 단단하게 움켜쥔다
신림동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창자를 따라 내려가는 음식물이 이러할까
헤드라이트가 골목에 주차된 차 밑을 비춘다
오래 묵은 담배꽁초와 찢어진 정보지 한 장
불빛 사이로 잠시 비쳤다 사라지고
공복으론 눅눅한 얼굴들 몇 들어왔다 밀려난다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흉내내던
나에겐 그만그만한 중소 도시가 고향이었다
마을버스는 정차할 때마다 변비 앓듯 사람들을 쏟아놓는다
불 꺼진 반지하의 어둠을 더듬는 손,
센서등처럼 어떤 지나침에 심장 두근거리면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떠올린다
그 뒷 배경이 어지럽게 파꽃처럼 피어난다
[감상]
이 시는 고향을 떠나와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마을버스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순대를 비유 해내는 솜씨가 일관되어 흐름이 돋보이고요. 또 마지막 연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을 울림 요소에 맞게 잘 형상화시킨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는 소시민의 삶을 심미적으로 투영하려다보면 자칫 감상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데, 이 시는 그러한 부분을 슬쩍 비껴가며 순수한 본질을 포착해내려 한다는 점이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