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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거품

2001.05.26 12:09

영화 조회 수:127

의식의 거품

약간 부어있는 얼굴과 온 몸들, 까만 얼굴의 남편과 아들..

조금은 불편했던 동료의 병문안을 가서 처음 내 눈에 들어 온 모습들이었다.

"카드하고 구하기 힘든 책하고 다 잃어 버렸어.." 머리를 긁적이며 멋적게 웃는 아저씨의 말이다. "잃어 버리는 걸로 유명해.." 별로 꾸짖는 투가 아니다. 상대방의 흠이나 잘못도 적당하게 이쁘게 보아 주면서 넘어가는 눈치다. 악의 하나 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연신 눈을 찡그려 가면서, 입으로는 웃으면서 카드 잃어 버린 건 상관 없는데 구하기 힘든 책 잃어 버린 걸 조금은 과장되게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초라하고 궁상맞을 수가 없었다.

근데 왜 나는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이제까지 나의 생각들에 모종의 거품이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지축이 흔들리고, 나를 둘러싼 사물의 시간이 잠시 늦추어 진 것 같은 그 느낌의 근원은 무엇일까.

내가 타인을 때론 받아들이고, 때론 거부하는, 그 때마다 작용하는 나도 어찌하지 못하는 그 잣대에는 이러한 여유가 있었던가. 혹시나 그 때마다 입으로 내 뱉어진 명분, 정당함, 타당성 뒤에는 오직 나하나의 안위만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철저하게 약한자의 미덕에 불과한 그러한 자기 보존 본능, 그 밖에 무엇이 있었는가 찾을 도리가 없다.

초라하고 궁상맞은 자리에서도 편안하게 웃을 수 있고, 누가 보아도 명백한 타인의 실수와 흠집을 애정 어리게 보아 넘겨 줄 수 있는 그런 강한자의 미덕을 내가 한 번이라고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의식의 거품을 모조리 제거하고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타인들로 이루어진 날실과 씨실로 짜여지는 그토록 추상적일 수밖에 삶을 입체적으로 분명하게 직시할 수 있을 때, 그 때야 비로소 난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인사가 늦었죠.. 안녕..
이렇다 할 말도 없이 날이 좀 흐린 핑계로 비맞은 중 마냥 주절대다 갑니다.
강한자의 미덕으로 이해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