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오노요코를 잘 몰랐다.
그녀가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부인였다는 걸
팜플렛을 보고 알았다. 그러나 작품들을 보면서
한편 많이 놀랐다.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과
인식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철학적 사유까지
정말 대단했다. 메모하고 싶었던 글귀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녀의 에너지가 지금까지 전달되는 것만 같다.
365명의 엉덩이를 찍은 영화 '엉덩이'.
걷는 모양에 따라 다리와 엉덩이가 정확하게 4등분되는
풍경도 인상깊었다. 그 실룩거리는 움직임의 힘이
정확하게 가운데 중심에 점철되는 것도 그랬다. 소실점처럼
내다보이는 그 끝으로 불알이 보이거나 털이 보였다.
욕망은 어차피 그 끝을 지향하지 않는가.
나체의 여자에 꿀을 발라 파리가 꼬이게 하는,
그런 나체 위의 파리를 카메라로 찍은 '파리'도 기억에 남는다.
카메라는 전지적 시점에서 파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우연을 필연적으로 포착해낸다.
파리가 유두에 앉아 날개와 앞다리를 비빌 때
오노요코가 발음해내는 파리와의 교감소리는
그야말로 파리를 특설무대의 지휘자로 만들어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견디는 여자는 털이 많았고,
마지막 마무리의 창문 너머 하늘은 그다지 맑지 않았다.
저처럼 우리는 꿀이 발라진 세상에서 파리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끈적한 욕망을 벗어날 수 없는,
그것을 담담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70여 년의 세월이
카메라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2003. 6.29. 시청 로댕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