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싹 - 김지혜

2005.12.27 14:34

윤성택 조회 수:2666 추천:266

<싹>/ 김지혜/ 《문학과창작》2005년 가을호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오는 사이
        비닐봉지 안 감자들은 서로를 억세게 부둥켜안았다
        어른 손가락만큼 자라난 독(毒)줄기로 전생까지 끈끈히 묶었다
        물컹한 사체에서 기어나와 처절히 흔들리는

        아직 나 죽지 않았소, 우리 아직 살아 있소
        생명 다한 모체를 필사적으로 파먹으며
        비닐봉지 안의 습기와 암흑을 생식하며
        저 언어들은 푸르게 살아남았다

        싹 난 감자알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본다,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오는 사이
        나를 비켜간 저 푸른 인연의 독(毒)


[감상]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 속에 감자들이 있습니다.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오도록 방치된 그 봉지 속에서, 살아남은 <감자>의 묘사가 강렬합니다. <비닐봉지 안의 습기와 암흑을 생식>하는 그 질긴 생명력은 존재의 경외감마저 갖게 합니다. 제 몸을 파먹으며 사투를 벌이는 처연한 2연의 목소리가, 그동안 나를 잊고 존재 의미마저 잊고 살아가는 우리네를 소름 돋도록 일깨워주는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871 이발소 그림 - 최치언 2006.01.18 1632 236
870 봄비 - 서영처 2006.01.14 3275 276
869 그 거리 - 이승원 2006.01.12 1938 235
868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823 255
867 2006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1] 2006.01.02 2454 270
866 콘트라베이스 - 이윤훈 2005.12.30 1614 232
» 싹 - 김지혜 2005.12.27 2666 266
864 전생 빚을 받다 - 정진경 2005.12.20 1671 238
863 봄날의 부처님 - 김애리나 [1] 2005.12.13 1594 206
862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861 담쟁이덩굴의 독법 - 나혜경 [2] 2005.12.08 1467 194
860 겨울 그림자 - 임동윤 [2] 2005.12.07 2070 224
859 추억 - 신기섭 [6] 2005.12.06 3154 232
858 바람의 목회 - 천서봉 [4] 2005.12.01 1978 227
857 토기 굽는 사람 - 최승철 2005.11.28 1528 218
856 가을이 주머니에서 - 박유라 [1] 2005.11.25 1763 218
855 바람의 배 - 이재훈 [1] 2005.11.22 1687 206
854 월남 이발관 - 안시아 2005.11.17 1459 224
853 흔적 - 배영옥 [2] 2005.11.16 2276 250
852 자전거, 이 강산 낙화유수 - 최을원 [2] 2005.11.15 1402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