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일기를 쓴다고 해서 일기인이라 부르지 않듯,
시를 쓴다고 해서 시인이라 부르는 것은 저에게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시는 일상적인 자기 삶에 대한 자기고백이므로
자신에게 가장 솔직하려고 노력했다면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시로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그 시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시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는 그 시의 주인이 있기에 그 시는 위대한 겁니다.
비록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지만
그 당사자들에게는 당사자의 삶보다 더 중요한 삶은 없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바로 자신입니다.
그리고 시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지요.
시는 별볼일 없기에 하찮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일상적일 만큼 중요하기에 새삼스런 호칭이 오히려 격을 낮추는 겁니다.
공기가 잠시라도 없으면 인간의 목숨이 끊어지지만,
공기의 존재는 고맙게도 우리주위에 항상 존재하지요.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그 고마움을 항상 표현하기는 더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나,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시에 대한 고마움은 시라고 불리는 일이 아닙니다.
시인으로 명성을 날리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상에 시인만큼 시를 욕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똑같은 시,똑같은 삶을 차별하는 일만큼 오만한 일은 없기 때문이죠.
시에 대한 고마움은 '시'라고 불리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쓸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의 주인공들을 모두 존중하는 일입니다.
모든 삶의 주인공을 존중하게 되면 모두가 시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시인의 경계는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한 경계는 특별한 사람만이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조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