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장승리/ 『중앙신인문학상』당선작 中
뒤통수
마름모꼴의 운동장을 걷고 있다 뾰족한 끝, 그 끝이 너무 아득해 아찔하다 초여름인
데 난 내복 위에 반팔 소매의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저 앞에 엄마와 여동생이 손
을 잡고 가고 있다 참으로 다정해 보이는 모녀지간이다 난 운동장 밑바닥에 깔려있
는 모래와 함께 서걱이며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맞잡을 손이 없다 운동장에선 포근한
지하실 냄새가 난다 그 냄새 사이로 스며들고 싶다 운동장 밑,숨겨진 지하실로 주저
앉고 싶다 한번도 뒤돌아보는 법 없는 엄마의 뒤통수 눈물로 얼룩진 희미한 그 뒤통
수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 난 한번도 세상의 앞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 엄만 그 누
구의 모진 뒤통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었길래 그토록 막막한 당신의 뒤통수를
나에게까지 유전하는 건가요 엄마와 난 뿌리는 대로 소출할 수밖에 없는 깜깜한 흙
밭이라는 걸 몰랐나요 엄마 덕분에 내 뒤통수도 촉촉하게 젖어 있어요 뒤통수를 적
시는 불쌍한 그 눈물들에 흠뻑 취해 미지근한 토사물 속에서 잠이 들어요 씹고 또
씹어 삼켜버린 엄마의 뒤통수는 내 피와 살이 되지 못한 채 토사물 속에 뒤섞여 서
럽게 울어대고 울음소리에 깨버린 난 토사물과 함께 땅바닥에 들러붙는다 시간을
잃어버린 오래된 벽시계가 밤하늘에 걸려있다 난 나를 뒤로 한 채 초점 잃은 시계
바늘 위에 걸터앉아 내 뒤통수를 물고 날아가는 시간의 뒤통수에게 손을 흔든다
[감상]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엄마와 여동생이 앞서가는 운동장, 화자가 바라보는 뒷모습이 잔잔하게 풀어집니다. 뒷부분에 가서는 상상력에 의한 전개가 흥미롭습니다. 마치 오래된 유년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형상이랄까요. 모쪼록 심사평에서처럼 새롭다고 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