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이발소」/ 안시아/ 현대시 2003년 11월호
바닷가 이발소
저녁놀이 포구의 가로등을 하나 둘 켜올 때, 덤불처럼 헝클어진 아낙이 돌
을 쌓고 있다.
이발소 깨진 거울마다 조각난 파도가 밀려온다. 한 귀퉁이에 너부러진 수
건들, 뿌연 먼지에 던져진 지 오래다. 길이 멈춘 구두엔 주인대신 묵직한 어
둠이 신겨있다. 칠이 벗겨진 의자 위에도 정지된 시간이 더께로 앉았다. 바
람이 기웃거릴 때마다 저들끼리 휘감겨 뭉쳐지는 것들, 허공을 훑어낸 상처
들일까. 몇 해 전, 이발사는 여자와 함께 종적을 감췄다. 죽은 사내의 목덜
미에는 포말이 일었고, 파도처럼 한차례 깊이 벤 흔적이 역력했다. 그날 밤
쉬지 않고 면도칼같은 비가 내렸다. 그 후 며칠동안 소문처럼 파출소 깃발
이 격렬하게 바람을 쥐었다 놓았지만, 바다는 여태껏 그날을 함구해왔다.
어시장 붉은 함지마다 현상금처럼 달이 뜨고
갈매기가 떼지어 어둠을 폐가로 물어 나른다. 삐걱거리는 문을 향해, 아낙
이 주워든 돌을 힘껏 팔매질한다. 어둠이 수런대자 터질 듯 까르르 웃는다.
[감상]
오래된 포구에 가면 한번쯤 볼 수 있는 풍경이겠지요. 폐가가 되어버린 이발소. 발길을 멈추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이 시는 실성한 여자를 통해 과거 이발소에서의 살인사건을 보여줍니다. 왜 죽였는지 그리고 누가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서사가 하나 하나의 소재와 잇대어지면서 버려진 것들에게 과거를 명명시켜 줍니다. 아마도 이 여자는 정신을 놓았던 시점으로부터 단 한번도 그 폐허의 이발소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슬픔 같은 것, 쓸쓸함 같은 것, 오래된 포구 폐허의 이발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