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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김경주/ 2003년 『대한매일』로 등단
http://www.poemnadri.x-y.net/menu2.htm

        
[감상]
우선 커피나 녹차를 마시며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넉넉한 시간과 '이루마' 정도의 음악도 괜찮겠지요. 부제로 모노 희곡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한 사내가 읊조리는 치열한 장편 詩에 가깝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곳곳 사유의 진폭으로 자장이 느껴질만큼 에너지를 느낍니다. 활자와 활자에 응집된 시적 직관이 마치 집적 회로 끝에서 발하는 불빛이랄 까요. 작품에 푹 빠져보시길요.  





거의 모든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모노희곡>



* 김경주 시인의 글 : 대학시절에 쓴 모노 희곡이다 많이 거칠고 불콰한 구석이 많지만 한군데도 손보지 않았다 거기엔 무언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과 나란한 무덤일 수 없음으로 여기 내 죽음의 규범을 적어 논다 --



비 내리는 길 위에서 여자를 휘파람으로 불러 본 적 있는가

사람은 아무리 멋진 휘파람으로도 오지 않는 양이다 어머니를 휘파람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대대장을 휘파람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간호원을 휘파람으로 불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것이 내가 여기에 들어온 경위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휘파람을 잘 분다 해가 뜨면 책을 덮고 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구석으로 가서 나는 암소처럼 천천히 생각의 풀을 뜯을 것이다

나는 유배되어 있다 기억으로부터 혹은 먼 미래로부터.

그러나 사람에게 유배되면 쉽게 병든다 그리고 참 아프게 죽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여기서 참으로 아프게 죽을 것이다 흉노나 스키타인이거나 마자르이거나 돌궐이거나 위구르거나 몽골이거나 투르크족처럼 그들은 모두 유목의 가문이었다 그들의 삶은 늘 유배였고 그들의 교양은 갈 때 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상식은 죽어가는 가축의 쓸쓸한 눈빛을 기억할줄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벽에 많이 태어났고 새벽에 많이 죽었다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은 나를 작곡한 그 남자다 그는 현세에 음악으로 환생한 것이다 까닭에 나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전생을 거듭 살고 있는 것이며 나의 현생은 전생과 같다 나는 다시 서서히 음악이 되어가는 것이다


예감 또한 음악이다 자신이 한번도 들어 본적 없는, 그러나 자신과 가장 닿아있는, 자아의 연금술이다 나는 지금 방금 내 곁을 흘러간 하나의 시간을 예감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생각은 음악이 되고 한 컵의 물이라는 음악을 마시는 동안 내 생각은 어느 먼 초원 스페인 양떼들의 털을 스친다

모든 나를 인정하는 순간이 올까? 목이 마르다
사람은 수분이 60프로일 때 2프로의 물만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는 식물이다 목이 마른다는 말은 우리의 몸이 느끼는 생물학적인 요구가 아니라, 언어 이전의 시원부터 존재해 온 아득함이며, 무한의 시간이고 공간이다. 목이 마르다고 하는 사람의 눈 안쪽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당신은 그 아득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완성할 수 없다면 네가 완성해라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세상이 온통 비만 온 줄 알고 죽어간다
비 오는 날 태어나자마자 하수구에 던져진 태아는 세상은 태어나자마자
하수구속에서 죽어가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다 그의 어미는 야산의 둔덕에서 하늘을 보며 빗물로 피 묻은 자궁을 씻고 있다 해가 뜨고 개미들이 어미와 태아의 끈이었던 태를 땅속으로 끌고 간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그것들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비 온 뒤 축축한 땅에 귀를 대면 누가복음이 들려온다 개미의 저녁 예배를 듣다가 저녁을 굶었다

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내가 살았던 시간은 아무도 맛 본적 없는 밀주(密酒)였다
나는 그 시간의 이름으로 쉽게 취했다

유년은 생의 르네상스다 내가 이슬람교도였다면 나는 하루 여섯 번 유년이라는 *메카를 향해 절을 올렸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저수지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한 순간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렸다 수면으로 가라앉으면서 바라보던 물 밖의 멀어지던 빛, 그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기억할 수 없는 것까지 기억하려고 발작하는 습성은 그때 물속에 가라앉으면서 배운 것이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까지 어머니의 젖 맛이 기억나지 않아 새벽에 자고 있는 어머니의 가슴을 물어 본적이 있다

나는 소멸하기 때문에 초월을 꿈꾼다 나는 초월을 꿈꾸기 때문에 소멸해간다
병든 사람은 다 그렇게 말한다

모든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이 살던 시절의 공기가 고여 있다 따뜻한 말속에 따뜻한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모든 영정 속에 흐르는 표정은 곧 그 사람이 숨쉬고 있는 공기다 영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면 내가 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나를 느끼고,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게 전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정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 이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붉은 공기가 된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죽음이 필요했기에 나는 아무도 들여 다 보지 않는 질서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망막에 영사된 촛불이 눈 속에 공기를 모두 연소하고 있다 촛불은 다른 불빛들과 이웃하지 않는다 이것이 촛불이 밤에만 피는 까닭이다

1976~ ? 나와 생멸을 같이할 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나의 종교다

수음을 하는 동안 몇 천 년 나는 늙어간다
수음을 하는 동안 나는 나라는 문명이 슬프다

너와 내가 뜨겁게 안는 순간 문득 우리가 죽는다면 몇 천년이 지나 우리는 화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만질 것이다 거칠고 딱딱한 질감에는 슬픔이 담기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분노다 나는 비로소 천년이 지나 사람들이 우리를 만질 때 돌 밖으로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것을 위해 내 생은 실습중이다

이곳의 욕실이 공동욕실이라는 것이 나는 마음에 든다. 예전에 나는 욕조에 가득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물의 따듯한 질감이 나를 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강을 뛰어내리려는 순간에도, 비 오는 날 면도날을 씹으며 해바라기 한 송이를 들고 서 있을 때에도 나는 이 질감을 그만둘 수 없었다 언덕배기에 뛰어 올라 첫 숨을 몰아쉬고 바라보던 보통열차, 나는 어느 해직 교사의 쓸쓸한 귀향을 바라보며 돌아오던 날 내 생애 첫 시집을 샀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더 이상 바지에 오줌을 누고 난 후의 그 따뜻한 질감 뒤의 오싹함이 아니기를 바라며 간밤 가슴에 찍힌 발자국들의 임자가 누군가가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을 때 허망한 비밀처럼 그 시들은 모두 욕조에서 훌륭한 종이배가 되어 흘러 다녔다 사실 나는 종이로 박쥐를 만들고 싶었지만 ..


기억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한번 자살하는 것과 같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생이별 하는 것이다 저승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곳의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낯선 곳에서 자는 일이란 저승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생에 다름 아니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내가 한번 자살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빛의 속도보도 빠르게 다가 올 때가 있다 소녀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바람이 한 페이지의 얼굴을 넘기며 간다 동풍은 과묵하다 불안은 자기표현의 정직한 양식이다 내가 매일 맞는 주사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

간밤에는 부대를 빠져나와 대원들과 어울려 무덤을 팠다 삽날이 두개골에 닿았을 때 나는 낙타를 떠올렸다 사막을 가다가 모래처럼 허물어 졌을 낙타, 십리 밖에서는 사람냄새가 났다 무덤에 묻혀 있던 그의 뼈를 구워 점을 쳤다 그는 은<銀>나라 사람이었다 시를 썼고 절벽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꿈은 어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유배지다


저 자신의 내면을 도굴하는 것이 꿈이라면 사람들은 꿈이라는 실형을 살고 있는 셈이다 위험한 짓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곳을 다녀올 때마다 다른 비석<飛石>을 세워둔다 그리고 거기서 데려온 기억의 공기를 문득 추억이라 부른다
추억은 기억의 빛이 닿아 생기는 그림자이므로 무엇인가를 추억함은 몸 안에 촛불이 하나씩 켜지는 것이다 그리고 불이 다 켜지고 나면 주사를 맞은 다리처럼 추억은 힘을 쭉 빼 놓는다
예전에 나는 추억을 팔아 시를 샀던 기억이 몇 번 있었다 사실 쓸만한 추억이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없다

기억이란 시간에게 영원히 압류되어버린 생이다.
시간의 전당포에서 나는 압류된 기억을 빌려와 추억을 생각한다. 대부분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로부터 빌려 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사진 밖의 나를 보면 어지럽다 시차 때문이다


沈?(침연), 未歸(미귀), 墓銘(묘명), 暮夜(모야) 나는 이런 계절에서 퍽 오래 살고 싶다


하늘은 분홍의 뻘을 어디서 몰고 오는 것일까 저녁만 되면 병동의 사람들은 예배처럼 창을 열고 노을을 가슴에 베낀다 창살을 통해 마지막일지 모를 일몰을 바라보며 쓴 사형수의 수기보다 더 아름다운 시는 아직 없다 그것은 죽어가는 자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가는 것들에게서 나오는 음악을 베토벤이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베토벤은 저 자신이 음악이었다 그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절박했을 뿐이다

빛을 보아서는 안 될 운명을 가진 뱀파이어부부가 죽기 전 스스로 햇볕 아래로 기어가 서로 끌어안고 부서진다 단 한번 빛을 보기 위해 그토록 많은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수천 번의 밤을 경험했다
나는 밤에 태어나 밤에 자랐고 밤에 시를 썼다 이 사실만으로도 지구에서는 절망할 만 하다

지구에서는 시인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시인의 별에서는 지구가 보인다

사이다에 지렁이를 한 움큼 담그고 마셔버린 나의 이종 삼촌은 자신이 목성에서 왔다고 했다 지금도 나주 백병원에 가면 고모할머니가 가져다준 한약봉지를 하나씩 개수구에 버리고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삼촌은 이제 마흔이 다되어 무섭게 음식만을 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지구에 와서 배운 것이 휘파람뿐이라고 했다 전남대학교 천문학과 83학번을 수석으로 입학한 삼촌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그 삼촌과 나는 어릴 적 로보캅 2를 함께 보고 나란히 화장실서 로보캅처럼 오줌 누던 기억이 있다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마른 사타구니를 만지며 괴롭다 내게서 꿈이라는 혐의를 빼면 대체로 나는 무죄이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생이 끝장날것 같다 엄마를 불러!! 면회 온 엄마를 불렀다고 고막이 터지게 맞던 나의 아름다운 후임병은 누구에게나 거짓말이 늘어갔다
달 뜬 밤 기숙사 창틀에 앉아 비누를 갉아먹다가 실려 온 저 대책 없이 아름다운 옆방 소녀는 밤마다 쥐가 된다 하수구에서 시궁쥐처럼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소녀에게 인공호흡하지 않았다 소녀의 흰 발목과 소녀의 살짝 드러난 하얀 허리 사이에는 시커먼 털들이 무성했다 젖은 바지는 그 무참함을 가릴 수 없었다. 소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무성한 허벅지 털의 색감과 질감까지 포용할 수는 없었다 소문처럼

방이 좁아서 더 이상 양떼를 부를 수 없다 서랍과 옷장에도 양떼가 꽉 찼다


어느 날 망막을 마개처럼 따 올리면 수천 통의 필름이 눈 밖으로 줄줄 나올 것이라 믿는다 눈 안으로 빛이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필름은 눈 속에 살아있다 빛이 눈을 아프게 하는 건 눈은 깊고 어두운 성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는 커튼을 치지 않는다 병실은 늘 어둡다


한번도 꽝꽝 언 하늘에 연<淵>을 날려 보지 않은 사람과는 나는 놀지 않았다
찬송가를 백곡 이상 안다고 하는 사람과는 나는 노래 부르지 않았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줄줄이 암기한다는 사람과는 돈 거래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불효를 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릴케의 뜨거운 서시<序詩>를 앞에 놓고 자위를 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은 그대라는 차가운 성<城>안으로 들어가 평생 시만 쓰며 살겠다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번도 나는 그런 사람을 살아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칸은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 소설에 주술을 걸어 그녀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칸은 매일 비명처럼 살아갔다 우리는 절박하게 부패해 가는 생의 오류만을 시라고 불렀다 칸의 파오를 찾아가지 못한지 오래다 나는 칸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우리에게 생을 증거 하는 것은 고통뿐이었지만 우리의 면죄부가 고통 그 자체 일 순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우리는 근사한 기분이었다 칸과 나는 벌레처럼 웅크리고 자는 습관이 있었지만 배춧잎 같은 이불 위에서 깨어나면 나는 그와 나의 현실을 생각해야 했다 현실은 죄 지은 것도 없이 우리가 매일 써야하는 삶의 조서였다 우리는 매일 고개를 숙이고 조서를 썼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죄 짓는 기분이다

*마크툽! 기억의 피라미드여 굳건 하라 어떤 나든 함부로 파들어 가면 묻힐지니 기억은 다 해독하면 곧 달아나야 한다 금방 돌이 떨어지고 벽이 갈라지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는 기역(氣驛)이 무섭다

바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속으로 유배된 자들이 내게 띄우는 편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는 창을 열고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그 편지를 읽는다 로비에서 소녀는 달력을 보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환자복을 파고들어 배를 부풀리던 바람은 어디서 온 편지일까?

소녀는음력달이완전히찼을때어두운계단입구에서혼자아이를낳았다내가그녀쪽으로조용히걸어갔을때그녀는거의움직일수없을만큼지쳐있었다너무어두웠기때문에내가누구인지도그녀는확인할수없는상태였다한손에는태를자른과도가힘없이쥐여있었다나는그녀에게다가오는그림자였고그녀도내가보지못한그림자를가진채누워있었다아이는울지 않았다나는그아이를안고내방으로천천히걸었다그녀가손을뻗어잠깐동안무엇인가알수 없는알타이어를중얼거렸지만이윽고그녀는조용히벽에비친내그림자만만지고있었다나는그아이의몸에벤어머니의피를젖대신먹였다새벽엔가축의젖을물렸다아이의몸에선라일락향이났다사람들의눈을피하기위해나는아침에아이를머리부터천천히삼켰다가저녁이면뱉어내서다시쥐의젖을물렸다아이는내안의굴에서낯에는박쥐처럼거꾸로매달려잤고밤엔내가읽어주는나의시를들었다아이는조금씩눈이멀어갔다아이가다자랐을때나는 갈매기의혼을넣어주었고아이는말의몸을빌려달력의초원으로달려갔다아이가떠나기전 내게당신시는영하라고했다나는아이가떠난후쓸쓸해서몽골어를배워보려고했지만곧그만두었다달력에서쏟아지는눈으로방이얼었다

눈물은 자기 안의 빙하가 녹는 것이다 차가워지려면 뜨거워지는 법부터 배워야한다 뼈의 길을 찾아들어 섬광을 남기는 보검처럼. 칼은 뜨거우면서 차갑기 때문에 강하다 밖으로 나오는 울음은 뜨거워서 타인의 마음을 베지만 안으로 우는 울음은 자신을 베기 때문에 차갑다 눈물의 칼집은 제 안의 썩는 울음이다 *썩는 것들은 따뜻하다 똥처럼

하늘은 스콜라 철학처럼 흐른다 구름은 제3의 물결이다 바람은 바카디151처럼 독하다 나무들은 루마니아 전설처럼 고요하다 숲은 한물간 산부인과처럼 조용하다 안개는 논리가 없고 태양은 실천중이고 호수는 냉소적이다 먹어야 할 알약은 베이컨 적이고 경험하지 못한 진실은 아직 내 앞에 평등하고 헤겔 보다 나는 기도를 잘할 수 있고 내 기도가 더 형이상학적일 수 있고 1999년 6월 진해부두에서 감전 되 죽은 이 병장보다 돌계단은 차갑다 신은 관념을 품어서는 안 되고 나는 코펜하겐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코펜하겐이라는 음악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코펜하겐이 되고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믿는다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쓰고 설명하지 않기 위해 나는 울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유산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나고 나를 재대로 발음하고 나를 가지고 소통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슬픔에 부상당했고 가난에 고문 받았고 종교에 암살 당했고 밤마다 임 병장의 자지를 만져주며 살아남았고 대신 매일 시로 자살했고 시로 美를 살해했다

왜 사람의 얼굴엔 나무가 자라지 않는 걸까 플라타너스 씨앗들을 얻어와 벤치에 앉아 얼굴에 심는다 얼굴에 가지가 피고 잎이 돋으면 그 그늘아래 나는 나의 피곤을 좀 쉬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녀를 내 그늘 아래서 재울 것이다 소녀는 그늘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나는 파란 사과 만한 그녀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기도 하면서 내가 잠들면 몰래 소녀는 자신의 눈물을 내 얼굴에 심을지도 모른다 후에 사람들은 이것을 몽사의 연금술이라고 부를 것이다 소녀와 나는 초원에서 놀다가 문득 저 병동의 하얀 벽 속으로 들어가 전설이 될 것이다 벽화처럼


방에 침을 퉤 퉤 뱉는 또 한 마리 모기의 목을 땄다 모기의 뇌<腦>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중국말을 믿고 병 속에 모아놓은 모기의 머리들을 들고 소녀의 방문 앞에 놓았다 열쇠구멍으로 소녀가 내 뒷등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죽으면 너는 꼭 나를 해부해야 한다 내 가슴을 절개하면 누구 말대로 내 가슴에선 수 천 마리 새들이 한꺼번에 가슴 밖으로 날아오를 것이다


죽이고 싶은 시인이 몇 있다
너무 아름다운 시를 썼기 때문에 죽이고 싶은 시인이 있고
너무 시를 아름답게 보기 때문에 죽이고 싶은 시인이 있다
굴욕을 아는 시인은 저 자신의 삶이 한 권의 시집이어야 하고 그 시집은 자아의 병동이어야 한다

시인은 신이 놓쳐 버린 포로다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은 너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졌다라고 쓰는 것은
단지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곳에 산다
그것이 너한텐 꽤 중요하나 보다

잠자는 동안 천정에서 수천 개의 붉은 눈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 몸밖으로 나온, 눈 없는 내가 내 위에 올라타 내 두 눈을 뽑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늦은 아침까지 눈을 뜨지 않는 버릇이 나는 있다 아침이 되면 눈 없는 나는 다시 내 속으로 들어오고 나는 겨우 눈을 떠 등바닥에 시퍼런 강물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국적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병사다 나는 7월의 클라이막스를 안다
나는 7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7월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죽어갈 것이다 내 유서는 7월 위에 쓴 나라는 시 한줄 뿐이다 내가 죽으면 세상의 7월은 수장되어질 것이다
죽음은 바다 같은 것이어서 모든 년 월 일 시 분 초가 침전되어있다 누가 바다의 시간을 잴 수 있는가 신이? 그들은 겨우 가짜다

나는 이런 것들을 느낀다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마리아상이 눈물 흘린다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차에 친 사람이 바닥에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장례식차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고 있고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시도 아니고 좆도 아닌 것으로 누군가 시상식에 오르고 있고 몇 백 마일 떨어진 늪에서 얼룩말이 악어 입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다
몇 백마일 떨어진 전깃줄 위에 인간에 오염된 새의 눈이 썩고 있고
몇 백 마일 떨어진 담벼락에 기대어 누군가 나를 하늘위로 그리고 있고
몇 백 마일 떨어진 창속에서 누군가 탈고를 막 끝내고 숨이 멎었다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저승사자들이 지하철을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고
몇 백 마일 떨어진 창문에 안개가 미친 듯이 흘러내린다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출생을 알고 찾아온 아들이 어서 돌아가기를 바라는 어미는 초초하게 거실을 서성거린다
몇 백 마일 떨어진 골목의 대문 앞에서 누군가 서성거리고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죽음은 소녀에게 다가온다
오늘, 음악은 참 희곡 같다


소녀가 세면대의 거울을 한 장 다 삼켰다
깨진 거울 조각들이 목으로 넘어가다가 피부를 뚫고 나왔다
소녀의 눈은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포구였다 발목의 힘줄이 강물처럼 아직 살아 뛰고 있었다 가는 발목이었다 죽음이 서서히 소녀에게 다가올 수록 소녀 주변의 공기도 서서히 썩어들고 있었다. 나는 사진기를 들고 와 그녀의 마지막 그림자를 찍었다 렌즈 속으로 그림자가 쭉 빨려 들어왔다 마리아가 긴 천을 가져와 그녀의 육체를 싸서 안고 나갔다 마스크를 쓴 예수가 소녀를 부검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이 면밀했다 심장의 구근을 잘라내고 파란 피를 툭툭 털어 담낭에 담아 갔다 가슴뼈 안에 살아 있던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경찰이 바닥에 흰 락커로 그녀의 마지막 실루엣을 그려놓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닫힌 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나비 한 마리 이쪽으로 들어오려고 애썼다 그 밤 나는 인디언처럼 방에서 울었다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했고 S가 그러듯 누군가 나를 과장해서 사람들에게 문자 보냈다. 다음날 간호원이 침대 밑에서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르네 그루쎄. 사계절)와 짚시 인형을 빼앗아 갔다 벽에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그림을 락스로 다 지웠다 철지난 달력을 다 찢고 소설 서린과 시집들을 압수했다 노을을 등으로 받고 있는 내게 간호원은 이마에 성호를 그어주고 사라졌다 정원에서 시집들이 타고 있었다 하늘로 오르는 연기들이 다 시라니 믿을 수 없었지만 간호원을 용서하지 않기로 하고 인디언처럼 분노했다 웃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꿈속에서 어떤 호수 가에 앉아 있었는데 저 멀리서 상여를 메고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호수의 차고 푸른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곳으로 들어가면 모두 죽을 것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안 된다고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들은 내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쳐 불렀지만 그들에게서 냄새처럼 퍼져 나오는 음악이 내 목소리를 그들에게 전혀 전달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씩 물속으로 잠겨갔다 그러다 문득 나는 상여를 메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들 모두의 얼굴이 내 자신의 얼굴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전부 눈동자가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상여 속의 망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상여를 덮고 있는 꽃 천을 헤치고 관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곳에 나의 어머니가 누워있었다 한 그루 나무뿌리처럼 뻣뻣하고 말이 없었다 목이 잘린 어머니는 자신의 머리가 아닌 내 머리를 옆구리에 단정히 끼고 있었다 나의 얼굴이 어머니의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 밖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난생 처음 나는 나의 울음을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 프랑스 소설 제목에서 인용
* 박형준의 시구절중 일부 변용
* 파오: 유목민들의 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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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화석 읽기 - 채풍묵 [1] 2004.08.11 1337 195
658 그 곳이 결국은, - 문성해 2004.08.09 1428 180
657 명중 - 박해람 [2] 2004.08.07 1427 182
656 시인의 폐허 - 성미정 2004.08.06 1286 193
655 스며들다 - 권현형 2004.08.04 1423 160
654 살구꽃이 지는 자리 - 정끝별 2004.08.02 1403 170
653 이파리의 식사 - 황병승 2004.07.30 1308 168
» 거의 모든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김경주 [2] 2004.07.28 1929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