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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이 결국은, - 문성해

2004.08.09 17:19

윤성택 조회 수:1408 추천:180

「그 곳이 결국은,」/ 문성해/ 『시작』2004년 봄호


        그 곳이 결국은,
        
        늦가을 공원에서 보게 됩니다
        낙엽을 쓸어 담은 부대자루들을,
        푸석푸석한 것들도 뭉치면
        저리 탐스런 엉덩이를 가질 수 있다니

        모로 누운 부랑자 여인의 엉덩이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듯
        다른 둔부에게 밀착하고 있었습니다
        지하도 밖은 추웠고
        서로의 체온에 기댄 엉덩이들은
        끝이 없는 산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 낙엽을 가득 담은 엉덩이들은
        머잖아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낙엽이 쫓겨나가는 도시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부려놓은 곳
        쿰쿰한 나뭇잎 썩는 냄새
        빈대와 벼룩이 설치는 그곳에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그 둔부도
        섞여 있겠지요

        결국은
        그곳이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이 아니겠는지요


[감상]
낙엽을 쓸어 담은 부대자루를 부랑 여인의 엉덩이로 보는 시선이 흥미롭습니다. '모로 누운 부랑자 여인의 엉덩이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풍경으로 겹쳐내는 눈도 그렇고요. 부랑자와 낙엽의 공통적 요소는 '낙엽이 쫓겨나가는 도시'로 점철됩니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만을 지향하는 도시에서, 저리 탐스런 엉덩이가 추해 보일 리 있겠습니까. 훗날, 관짝에 담겨 어디론가 묻히러 떠나는 곳 또한 '우리가 닿아야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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