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병 기념비>/ 장이지/ 《시와사상》 2006년 겨울호
콜라병 기념비
슬픈 꿈을 꾸었다.
빈 콜라병이 욕조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콜라병은 파리한 빛을 발하는
심해어처럼
푸른 숨을 내쉬며
어질병의 해저로 헤엄쳐갔다.
이런 생각을 했다.
빈 콜라병이 헤엄쳐 간 곳은
두 번 다시는
가서 닿을 수 없는,
시간이 까맣게 질식한
두려운 처소라고.
많은 날이 지나고…….
빈 콜라병이 욕조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욕조 가득 빈 콜라병들이 잠겨 있었다.
한 이별을 기리려고
밤의 한없이 투명한 숨이
빈 병 안에 짙어가고 있었다.
간밤엔 슬픔 꿈을 꾸었다.
여태껏 마셔온 콜라보다도 더 많은 눈물이
방 한가운데
축축한 그림자로
주저앉아서는,
왈칵 울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감상]
깊은 심연으로 영영 가라앉는 것들에게서는 연민과 비운의 무게가 있습니다. 영화 <피아노>나 <타이타닉>처럼 가라앉는 그것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지요. 다만 아득히 잊혀져갈 뿐. 이 시는 꿈속의 <콜라병>을 통해 이러한 감성을 천천히 더듬어갑니다. 우리 일상에서 <콜라>라는 상징은 친숙하고 도회적인, 혹은 청춘 같은 강렬한 이미지와 왠지 모를 중독 같은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슬픈 꿈>과 맞닿아 있습니다. 암흑 속으로 수장되어 가는 기억들 같을까요, 그것들이 가득한 병이 꺼내 엎질러지는 소리를 세심하게 <울음>으로 연결시킨 점도 돋보입니다. 단연 <한 이별을 기리려고/ 밤의 한없이 투명한 숨이/ 빈 병 안에 짙어가고 있었다>가 밑줄 그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