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승>/ 홍일표/ 《시를사랑하는사람들》 2007년 1-2월호 
        수도승
        동해의 천곡동굴 끝자락에
        고스란히 형체 남아 있는
        수백 년 전 짐승의 뼈
        스스로 찾아들어간 동굴 속에서
        눈 부릅뜨고 죽음과 대적하며
        피안의 아가리에 머리 처박고
        마지막 순간까지 아작아작 죽음을 씹은
        저 견고한 턱뼈
        어둠이 그의 살을 발라먹고
        굶주림이 두 눈의 광채를 거두어 갔으리라
        진저리치며 컹컹 울부짖는 소리에 발목이 꺾이고
        숨이 막혀
        동굴의 끝까지 기어들어가 암벽을 할퀴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남은 온기를 내어주었으리라
        고독은 그를 먹어치웠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잘라버린
        그 자리, 
        차가운 돌바닥에 뼈로 새긴
        필생의 백서(白書)
[감상]
강원도 동해에 가면 천곡동굴이 있는데, 동굴 속 ‘저승길’이라는 곳에는 이 시에서 말한 늑대과의 동물인 듯한 뼈가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시는 그 뼈의 흔적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해냅니다. <어둠이 그의 살을 발라먹고/ 굶주림이 두 눈의 광채를 거두어 갔으리라>, 동굴에 들어와 갇힌 맹수가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묘사는 그야말로 가슴 한 켠을 싸늘하고 애잔하게 만들어줍니다. 제목을 <수도승>이라고 잡았기에 더더욱 그 의미가 다가오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