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 신정민/ 《주변인과 시》 2006년 겨울호
오발탄
203호에 이사온 그는 총잡이다
그가 쓰는 권총의 방아쇠는
손가락이 아닌 구둣발로 잡아당긴다
문 열어! 탕, 탕, 탕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쏜 총성은
그의 마누라 귀에만 날아가 박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출입구를 같이 쓰는 열 세대의 모든 귀에 날아가 박힌다
귀를 관통한 총알은
벽에 부딪혀 어지럽게 튕겨나와
아이들의 인형을 쓰러뜨리고
거울을 깨부수고
담뱃재 수북한 재떨이를 날려버릴 것이다
왜 안 열어, 빨리 열란 말이야! 탕, 탕, 탕
이불을 뒤집어쓰고
벽을 향해 돌아눕고
꾸던 꿈을 마저 꾸기 위해 눈을 감는 밤
시끄럽다고, 잠 좀 자자고
방아쇠가 입에 달린 105호 남자, 한 소리 지를 법도 한데
어째 조용하기만 한 밤
총성과 총성사이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깊고 고요한지
드나드는 사람 뻔한 비둘기 맨션
한 번도 본적 없는 203호 사람들
제발 열어, 열란 말이야! 탕, 탕, 탕
들리지 않는 새벽의 총성에
끝내 문은 열리지 않는다
[감상]
청각 이미지를 유려하게 형상화한 시입니다. 구둣발로 열리지 않는 출입문을 박차는 <탕, 탕, 탕> 소리를 권총의 발사음으로 전환시키는 지점이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경계입니다. 어쩌면 총소리보다 더 강했을 새벽의 발길짓에 다세대주택 주민들은 공포와도 같은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문이 열린다면, 폭력을 암시하는 <총알>로 거울이 깨지고 재떨이가 날아다닐 난장판은 불 보듯 뻔합니다. 조그만 자극에도 화들짝 놀라 날아오르는 <비둘기>가 하필 맨션 이름이 되었을까, 그들이 지켜온 평화를 일순 무너뜨리려 하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 제목마저 독자에게로 열려 있군요.
새삼 시의 구체적인 이미지화에 놀라며
그걸 읽어 내시는 윤시인님의 시안에도 감탄할 따름입니다.^^
아~ 이렇게 부족한 제가 요즘 책까지 멀리하고 있으니... ㅠㅠ
숨을 쉬어도 살아있지 않는 이 느낌,
순간 오후의 졸음이 화들짝 놀라 도망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