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 / 이경임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문학수첩》2007년 가을호
회전목마
내가 달리고 있다고 확신에 차 있을 때
삶은 눈먼 자의 환희처럼 빛난다
어둠 속에서도 별과 나무들은 춤추며
사원과 극장과 병원과 공장들은
한 올의 의심도 걸치지 않고 유쾌하게 돌아간다
내가 동경하는 종교는
이런 천진한 현기증
그러나 달리는 건
나와 목마들이 아니다
멈추지 않는 무심한 의지에 의해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신성에 의해
나의 발밑 거대한 광장이 돌아간다
그 광장의 붙박이가 되어 나는
기계적으로 솟아오르고 가라앉으며
묶인 말발굽들과 함께 일생 동안 삐거덕거린다
달릴 수 없는 목마가 부르는 노랫가락에 맞춰
들썩이며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어댄다
내가 동경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이런 흥겨운 비애
고요하게 돌고 있는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일그러진 웃음의 향기를 내뿜는다
[감상]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통해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돌이켜보게 합니다. 회전목마가 꿈꾸는 세상은 어쩌면 우리가 안주해 있는 현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종교의 <천진한 현기증>에 매료되고, 소비를 위해 원판을 돌리는 <무자비한 신성>에 몸을 내맡긴 채 일생을 탕진하는 건 아닌지요. 놀이공원이 현실을 환상으로 꾸미며 방문객을 맞이하듯, 우리의 사회는 거짓으로 포장된 진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시에는 이런 삶의 모순과 괴리에 저항하는 냉소적 메시지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