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 김성수 (2003년 『현대시』로 등단) / 《시와창작》 2007년 11·12월호
성에
성에는
겨울이 쏘아대는 탄흔이다
아니면 밤새 거친 호흡으로 내달리던
바람의 생채기이거나 아버지가
잠 못 이루며 토해내던 마른기침이다
겨우살이가 막막한 이들의 한숨 같은
눈꽃이 숨죽이며 내린다
성에를 둥글게 문질러 밖을 보던 아이는
창에 호오 입김을 불고 하트를 그린다
눈꽃 스탬프를 꾹꾹 누르는, 버즘으로 번지며 꽃피는,
내 안에도 열꽃이 돋아 몽롱하게 창의 옹이를 들여본다
꾸벅거리며 내 어깨에 기대는 하루가 저문다
흔들거리는 막차가 달리며 눈길에서 중심을 잡는,
미끄러운 거리를 탱화가 그려진 창으로 흐리게 내다본다
낯선 내 어깨에 기댄 어느 얼굴도 흐리고, 끼이익-
급제동 할 때마다 기우뚱 흔들리는 배에 실려
위태롭게 성에 속에 빠진 옹이로 바다를 떠올린다
그 옹이로부터 송진 같은 눈물이 흐르고
쿨럭쿨럭 지친 옹이의 구멍에서 기침이 새어 나온다
타앙, 총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보트피플이
눈발의 바다를 미끄러가는 것을 누군가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쓰윽 닦아도 어둔 질주 속에 그만
내릴 정류장을 지나쳤다
[감상]
버스 차창에 허옇게 얼어붙은 서릿발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 성에 너머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병든 <아버지>, 아련한 사랑의 <열꽃>, 그리고 불안한 <보트피플> 같은 삶…이런 구조의 시에서는 독자를 리드하는 상상력이 중요한 축이 됩니다. 섬세한 필치의 묘사가 <성에>라는 주제에 탄력을 준다고 할까요. 삶이란 때때로 기억 저편 혹은 죽음 저편의 생각을 온몸으로 답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현실이 남루할수록 일생의 비밀은 간직할만한 것이 됩니다. 시인만의 이미지를 이리저리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게 될 것 같습니다.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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