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여자」/ 이용한/ 1995년《실천문학》으로 등단
함평 여자
밀리고 밀려서 함평까지 떠내려온 여자
저 광주나 나주쯤에서 몇 년씩 굴러먹다 들어온
시내버스 같은, 애인구함 낙서같은 맨 뒷좌석
등받이 다 떨어져나간 生이 너덜너덜한 여자
하차장 식당 반쯤 깨진 창문 너머로
물 마시듯 소주를 들이켜는 여자
입천장에 달라붙은 낙지를 떼어내며
캬아∼조오타, 웃을 때마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여자
-외로운 사내들은 바다를 나가지 못해
그녀의 입술에서 맵짠 바다를 만나고
정류장 화장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갈매기똥을 싸고 가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양철지붕에 쌓이는 눈을
올려다보며 젓가락을 두들기는 여자
그래도 왕년에 날고 겼어 왜 이래 이거
미아리 청량리 두루두루 안가본데 없다구
팔도강산 좋을시구 님을 찾아 아∼아아∼∼
비포장도로 같은 여자, 그 길을 무수히 지나간
사내들 다 잊어야지 잊어버려야지
푸하하 눈덩이 같은 웃음을 날려보내는,
이제 더 이상 떠밀려갈 데조차 없는
갈 때까지 다 간 함평 여자.
[감상]
우리네 삶이 어느 날 깨어나 어른이 된 것이라면, 지난밤 꿈은 추억의 덧없음 같은 것이겠지요. 들녘 바람이 몸 빌려 태어나 한 시절 머물다가는 인생. 이 시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군요. 한 여자의 일생을 거침없이 밀고간 맺음 뒤에 오는 울림. 이런 시니컬한 방식도 있구나, 화자는 시 안이 아니라, 시 밖에서 연민으로 젖어 있구나. '푸하하 눈덩이 같은 웃음을 날려보내는'에서 볼 수 있듯, 눈물보다 더한 표현을 실감합니다. '외로운 사내'에 대한 개연성을 보더라도 통찰력에 힘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