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함평 여자 - 이용한

2004.10.23 11:16

윤성택 조회 수:1249 추천:205

「함평 여자」/ 이용한/ 1995년《실천문학》으로 등단

        
        함평 여자        
        
        밀리고 밀려서 함평까지 떠내려온 여자
        저 광주나 나주쯤에서 몇 년씩 굴러먹다 들어온
        시내버스 같은, 애인구함 낙서같은 맨 뒷좌석
        등받이 다 떨어져나간 生이 너덜너덜한 여자
        하차장 식당 반쯤 깨진 창문 너머로
        물 마시듯 소주를 들이켜는 여자
        입천장에 달라붙은 낙지를 떼어내며
        캬아∼조오타, 웃을 때마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여자
        
        -외로운 사내들은 바다를 나가지 못해
         그녀의 입술에서 맵짠 바다를 만나고
         정류장 화장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갈매기똥을 싸고 가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양철지붕에 쌓이는 눈을
        올려다보며 젓가락을 두들기는 여자
        그래도 왕년에 날고 겼어 왜 이래 이거
        미아리 청량리 두루두루 안가본데 없다구
        팔도강산 좋을시구 님을 찾아 아∼아아∼∼
        비포장도로 같은 여자, 그 길을 무수히 지나간
        사내들 다 잊어야지 잊어버려야지
        
        푸하하 눈덩이 같은 웃음을 날려보내는,
        이제 더 이상 떠밀려갈 데조차 없는
        갈 때까지 다 간 함평 여자.
        
[감상]
우리네 삶이 어느 날 깨어나 어른이 된 것이라면, 지난밤 꿈은 추억의 덧없음 같은 것이겠지요. 들녘 바람이 몸 빌려 태어나 한 시절 머물다가는 인생. 이 시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군요. 한 여자의 일생을 거침없이 밀고간 맺음 뒤에 오는 울림. 이런 시니컬한 방식도 있구나, 화자는 시 안이 아니라, 시 밖에서 연민으로 젖어 있구나. '푸하하 눈덩이 같은 웃음을 날려보내는'에서 볼 수 있듯, 눈물보다 더한 표현을 실감합니다. '외로운 사내'에 대한 개연성을 보더라도 통찰력에 힘이 느껴집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691 심장의 타종 - 박판식 2004.11.19 1300 176
690 나무는 지도를 그린다 - 송주성 [4] 2004.11.17 1421 183
689 달팽이 - 전다형 [1] 2004.11.16 1544 172
688 선명한 유령 - 조영석 2004.11.15 1086 165
687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 박형준 2004.11.12 1187 177
686 눈 내리니 덕석을 생각함 - 박흥식 [3] 2004.11.09 1125 164
685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 박후기 2004.11.08 1107 170
684 정류장 - 안시아 2004.11.06 1627 194
683 뗏목 - 조은영 2004.11.04 1238 179
682 도배를 하다가 - 문신 2004.11.02 1221 181
681 정비공장 장미꽃 - 엄재국 2004.11.01 1076 183
680 이탈 - 이장욱 2004.10.28 1389 191
679 옛 골목에서 - 강윤후 [1] 2004.10.26 1703 203
678 찢어진 방충망 - 이기인 2004.10.25 1498 182
» 함평 여자 - 이용한 [2] 2004.10.23 1249 205
676 폭설, 민박, 편지2 - 김경주 [1] 2004.10.22 1334 206
675 냄비 - 문성해 2004.10.21 1430 223
674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 고영민 [1] 2004.10.19 1531 198
673 타워크레인 - 고경숙 2004.10.18 1198 209
672 가을, 도서관에서 - 남궁명 [2] 2004.10.14 1609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