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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타종 - 박판식

2004.11.19 17:03

윤성택 조회 수:1332 추천:176

『밤의 피치카토』/  박판식/  ≪시작≫ 시인선


        심장의 타종

        사랑하는 일이 드물다는 혹성에서
        철공소의 쇠망치 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눈물이 흘렀다
        철컥철컥, 얼어붙은 심장을 뚫고 밤과 낮이 바뀔 때마다
        한 뼘씩 자라나 총성 없이 쏟아지는 탄환 같은 잎사귀
        우리는 오래 전에 죽지 않았을까
        무엇을 맞췄다는 느낌도 무엇을 잃었다는 느낌도 없이
        죽은 나무 둥치에서 쿵쿵, 뛰어오르는
        매번 새로 태어나는 잎사귀
        무엇을 믿어야 하나
        나무들의 치마 속에 손을 집어넣어도 잡히는 신비는 없는데
        가지를 구부려 물방울은 씨앗으로 들어가고
        햇볕은 가장 먼 뿌리까지 스며드는데
        누가 죽어도 누가 태어나도
        조금도 무거워지거나 가벼워지는 법 없는 혹성에서
        철공소의 쇠망치 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눈물이 흘렀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쉼 없이 강철 팽이처럼 돌아가는 혹성 위에서
        한없이 먼 곳을 떠돌다 되돌아온 종소리



[감상]
의학적으로 건강한 심장박동은 카오스적이어서, 생각보다 굉장히 불규칙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생명은 유지되므로 이 또한 어떤 질서로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성’을 ‘몸’으로 은유해낸 것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쇠망치 소리에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심장박동으로 감정이 전해졌기 때문이겠지요. B612 혹성의 바오밥나무가 생각나기도 하고, 살아 있는 내내 누구를 위해 타종을 할까 싶기도 한 의미가 매력적인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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