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 / 조은영/ 《현대시학》2004년 11월호
뗏목
옥양목같은 구름 표류하는 늦가을,
날빛은 홑청 말리기에 좋았다
사륵사륵 마당을 구르던 감잎이
흩뿌려지는 늦햇살에 잠잠해진다
농에서 홑청을 꺼내는 어머니
세월이 누렇게 배긴 솜이불 펼치고는
엄지에 골무를 끼우신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물빛 노랫소리 하늘에 닿아
꿰맨 별자국 총총하다
바람이 감나무를 엮고 있는지
가지들이 자꾸만 휘어졌다
아버지 수의 빚던 바늘이 한땀 한땀
떠가는 겨우살이, 그 때 내가
읽은 책은 촘촘히 잇댄 슬픔이었다
모로 누워 듣는 흥얼거림 잦아지고
어머니 손바닥으로 이불을 쓸어낸다
방안에 띄워진 완성된 배 한 척
묶지 못한 실끝처럼 가을비가 주욱 당겨졌다
[감상]
세월은 강물과 같아서 한번 떠나온 곳은 거슬러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모진 풍랑을 이겨내는 배 한 척과 같습니다. 이불 홑청을 말리고 다시 꿰매는 과정을 ‘배 한 척’으로 형상화하는 이 시는 그런 가족에 대한 연민이 묻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가족을 이끄시는 어머니. 흥얼거리는 어머니 노래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애틋한 감응과, 서정이 돋보이는 ‘묶지 못한 실끝처럼 가을비가 주욱 당겨’지는 풍경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