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장석남/ 《문학사상》2005년 9월호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한 덩이의 밥을 찬물에 떠서 마시고는 어느 절에서 보내는 저녁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처마 끝의 별도 생계를 잇는 일로 나온 듯 거룩해지고 뒤란 언덕에 보랏빛 싸리꽃들 핀 까닭의 하나쯤은 알 듯도 해요
종소리 그치면 흰 발자국을 내며 개울가로 나가 손 씻고 낯 씻고 내가 저지른 죄를 펼치고 가슴 아픈 일들을 펼치고 분노를 펼치고 또 사랑을 펼쳐요 하여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의 다른 하나를 알아내곤 해요
[감상]
단아한 느낌이 드는 시입니다.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을 알아낸다는 발상이 그러하듯, <싸리꽃>에 대한 관심이 세상과의 소통으로 연결됩니다. 또 시에서는 그 어떤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전혀 다른 곳의 <저녁 종소리>가 들리고, 개울가에 너울대듯 펼쳐 놓는 회상들이 그러합니다. <여름 꽃엔 보랏빛이 많다는 발견을 새기면서 종종 보랏빛에 대해 생각한다>라는 시인의 시작메모가 있군요.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생각하는 감성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