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가 풀어내는
바람을 불러다가
내 발치에 앉히고
뒷짐지고 올 저녁에게
수퍼에 들러 찬 참이슬 한 병
받아오게 하고,
야채 참치라든가
짭쪼롬한 햄이라든가
냉장고가 꺼내 놓은 김치와 함께 하는 밤.
때론 내 젊음을 필사한
낡은 일기장을 들춰보고도 싶은.
손전화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만둔 그대가 잔에 잠기고,
펼쳐놓은 시집글귀가
나를 혹독하게 가르치는 그런 밤.
괜찮아요. 어머니.
한 병 정도는 일도 아니어요.
그러다가 등짝 한 대 맞아도 보는 밤.
철없던 그때
하필이면 지금 그리운 것일까.
네가 그리운 건지
술이 그리운 건지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