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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하던가

2001.07.02 13:22

윤성택 조회 수:148




좀처럼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름에 가려 알 수 없는 나날이다.
장마는 어쩌면
여름을 여름답게 하기 위해
마련된 회색 슬라이드가 아닐까.

고백하건데 나는,
매번 나를 위해 울어주는
애인을 바꿨다.
내 앞에 있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던 소주를,
"참이슬"에서 "산"으로 바꿨다.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참이슬은 너무 쓰다.
더 이상 쓴 소주는
나의 실존의 징표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몇 번의 변심을 하며
세상을 살아온 것일까.
부박한 감정을 젊음에 덧칠하며
그대를 떠나보냈던 것일까.
그래서 어쩌면 조강지처의 삶을 버리고
첩질하듯 술을 마셨을지도 모를 일.

내가 찬 소주를 사랑하여서
술이 나를 재웠던가.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대가 생각나
아슴아슴 귀를 후볐던 나날.

내가 치열하지 못해
이열치열로 버티지 못했던 것들
사랑하다 그만둔 것들
그리워하다 영영 떠나보낸 것들

내가 어느덧 손가락을 꼽으며
이곳에 오기까지
뚝뚝 소리나는 손가락 마디에
깃든,
좀처럼 만만하지 않던 삶.

내가 바뀌던가
세상이 바뀌던가
  
아님 죽도록 사랑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