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단상 02

2001.07.04 00:52

어떤이면 조회 수:60


1

동생이 그럴듯한 노트북을 샀다.

그치만, 난 내 노트북을 사랑한다.

녀석이 먹통이 된 어느날, 밤 난

녀석을 가슴에 품고 말했다.

널 사랑해. 절대 널 버리지 않을거야.

그리고 다시 전원을 넣었더니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제대로 작동됐다.

나는 녀석과 내가 교감을 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얼마후 녀석은 도통 잠에서 깨어나질 않았다.

아마도. 녀석도 나처럼 딜레마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지금쯤 어느 한데서 떨고 있을꼬.


2

나는 즐겁게 살기만을 수없이 다짐하며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일들을 격

으며 수없이 많이 좌절을 하기도 하였지만, 단순히 즐겁게 살기 위해서 (그것이 주변

에 어떠한 모습으로 비칠지라도) 노력하는 것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기실 얼마 되지도 않은 일이다. 지금도 역시 그렇게 사는것은 쉽지 않다. 지

금 얻은 교훈이란 결코 값지지도 않은 이런 것들이다.

되돌아 보지 말자.

성에 차는 성적표 같은 건 워낙에 받아들기 힘든 거니까.


3

만화건 소설이건 시나리오건 소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금기

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소재 고갈의 벼랑에

서 있는 작가의 마지막 밑천이기 때문이다. 개인사가 없는 인간은 없고, 각각의 개인

사는 그 어떤 이야기 보다 드라마틱하고 슬프고 웃기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전문

가가 어떻게 가공하는가 하는것에 문제가 달려 있을뿐 모두가 충분한 이야기거리들

이다.

나는 건방져서 아무 것도 못하는 이이다.

물론 건방진 것도 멍청함이나 무식함의 일부이다.


4

난 나의 사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이리저리 방방곡곡 광고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다분히 게시판의 독자들을 의식하여 부끄러운 얘기라면 한두바퀴 빙 돌리

고. 더 부끄러운 얘기라면 절대 적지 않고 더더 부끄러운 얘기라면 거짓말을 해댄

다. 나는 그럴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간악하다. 난 특정한 일이나 특정한 누군가에게

전할 요량의 글을 게시판에 올리지 않는다. 나는 공론화에 무리가 따르는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리지 않는다.

게시판에 올리는 나의 심경은 상당부분 심각하게 꼬여 있고, 부풀려 있으며, 때로

는 실제로 틀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

나는 남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해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고, 재미도 없고

재미도 없어할 읍소를 한다는 건 종국에 부끄러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입으로 말해주지 않는 이상 비하인드의 이야기를 알 턱이 없다.


6

소설같은 거 못 쓰더라도, 사랑이나 잘하는 여자로 살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이도 저

도 못하고 세월만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