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나도 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랑할 수는 있을지언정
예술가들의 삶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때가 되면 예술가들이 모두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을 감동시키고 전율시킨 작품이
예술가의 가난과 괴벽과 외로움에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서야
몽롱한 눈빛과 단단한 어금니만 지닌 채
쓰레기통 없이 사는 자의 아내가 되는 것보다
박제가 되어 서점이나 화랑에 걸려 있는
죽은 자의 묘지기가 되는 걸
어떻게 더 원한단 말인가.
그러나 삶이 예술가들을 좌절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니 나도 계속해서 맞선을 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