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강연호/ 세계사
제기동 블루스·1
이깐 어둠쯤이야 돌멩이 몇 개로
후익 갈라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막막한
날들이 제기천 썩은 물처럼 고일 때마다
내가 야심껏 던져 넣은 돌멩이들은
지금 어느만큼의 동그라미를 물결 속에 키웠는지
헛된 헤아림 헛된 취기 못 이겨
걸음마다 물음표를 찍곤 하던 귀가길
자취방 문을 열면 저도 역시 혼자라고
툴툴거리다가 지친 식빵 조각이
흩어진 머리칼과 함께 씹히곤 하였다
제기동, 한 집 건너 두 집 건너 하숙과
자취에 익숙했던 한양 유학 동기생들은
이미 모두 떠났지만 도무지 건방졌던 수업시대
못난 반성 때문인지 졸업 후에도 나는
마냥 죽치고 있었다 비듬 같은 페퍼포그와
도서관 늦은 불빛도 그리워하다 보면
이깐 어둠쯤이야 싶었던 객기보다
시대의 아픔이란 게 다만 지리멸렬했다
그런그런 자책과 앨범뿐인 이삿짐을 꾸려
어디로든 떠나자고 다짐했을 때
그동안 키운 야심의 동그라미들 흔적 없는
제기천 흐린 물결 속으로
내가 마지막으로 던져 넣은 건
채 부벼 끄지 못한 담뱃불이 고작이었다
[감상]
강연호 시인의 이 시집은 습작시절 옆구리에 항상 끼고 다녔던 시집입니다. 이 시인의 시집에서는 '비유'에 관한 엄청난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세상보기와도 같아서, 비유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일깨워주곤 했습니다. 이 시는 대학시절 제기동에서의 무력한 청춘을참 쓸쓸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던져 넣은 건/ 채 부벼 끄지 못한 담뱃불이 고작이었다 '에서 알 수 있듯 자기 진술로 일관하던 정적인 분위기에서 동적인 분위기로 반전시키는 솜씨가 백미입니다. 그 담뱃불의 파문이, 이 시의 다음 시집의 화두가 되었을 것입니다.
수밖에 없는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습니다.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 작품입니다. 모든이에게 강추하고 싶습니다. 간혹 제 짧은 시력으로는 조향록 시인(지나가나 슬픔,천년의시학)이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눈이 사뭇 달가웠습니다.